풍자·비판 살려내자…시사만화가 80여명중 정규직은 극소수“시사만화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합니다.”
11일 오후 종로의 식당에서 만난 시사만화가들은 모두 그림으로 잔뼈가 굵어 시사만화에 목숨을 걸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가장 큰 문제는 시사만화의 기능이 저평가,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데 있다”고 했다. 제대로 된 검증과 평가도 없이 시사만화의 무용론이 섣불리 제기되고 있어서다.
시사만화가들의 입에서 ‘시사만화의 위기’라는 말이 튀어 나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부분에서 고통스럽게 제 역할을 수행해 왔고, 현재도 촌철살인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지만 일부 언론사들이 저항·풍자·조롱·비판보다는 손쉬운 ‘시장주의’를 택하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래서인지 언론 비평기능의 주요 축을 담당하는 이들은 “막차를 탄 기분도 든다”고 말했다.
실제 문화 세계 부산 등 상대적으로 대우가 괜찮았던 언론사들이 만평 코너를 포기하면서 일부 위기감도 감돌고 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시사만화가는 80여명 선. 하지만 이들 중 10여명 안팎만이 정규직이고 나머지는 비정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시사만화계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다.
조선 중앙 소속 시사만화가가 억대 급여와 원로언론인으로서의 예우를 받고 있지만 예외적이다. 한겨레 경향 서울 국민 한국 등 중앙일간지 소속 시사만화가들의 사정도 그나마 나은 편이다.
한겨레 장봉군 화백은 “신문시장의 위축으로 시사만화계가 가장 먼저 타격을 입었다”며 “중앙지와 달리 지방신문사 환경이 열악한 걸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 지방·인터넷 신문 등에서 일하는 시사만화가들은 주로 계약직으로 일하거나 컷당 수당을 받기도 한다. 휴일에 일을 하지 않으면 급여가 지급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10여명 안팎의 중앙언론사와 유력 지방신문 화백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특히 일부 지방언론사 화백은 일러스트, 삽화 등을 동시에 그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루 1컷의 만평을 생산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살인적인 업무량이 부과되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경기·인천지역 일간지의 A화백은 “지방지나 인터넷의 경우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채용이 된다고 해도 만평 외에 삽화 제작 등을 해야 한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신문시장의 위기에 직격탄을 맞고 있는 당사자들이 바로 시사만화가들이다. “시사만화가가 구조조정 제1호 아니냐”는 우스개소리도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사만화가들은 동화삽화, 역사만화 출판 등으로 눈을 돌리기도 한다. 상업만화에 대한 유혹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시사만화가들은 “상업만화를 그리면 형편이 나아지겠지만 우리는 시사만화를 그리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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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시사만화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가 지난해 5월3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출범식을 갖고 활동에 들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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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시사만화 탄생 100주년을 맞아 다시 시사만화를 부흥하겠다는 의지도 비추고 있다. 1988년 3위, 1990년 2위, 1992년 2위, 1993년 5위, 1996년 6위의 열독률을 기록했던 과거를 회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다.
문제는 과거 독재권력을 조롱하며 독자들에게 쾌감을 선사했던 시사만화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더 이상 그 역할을 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정치에서 경제로 권력이 이동했지만 재벌 등 경제권력을 비판하기가 쉽지 않다는 고민도 자리하고 있다.
권범철(노컷뉴스·전국시사만화협회 사무국장) 화백은 “시쳇말로 가장 만만한 비판 대상이 정치인”이라며 “기업을 비판할 경우 광고 감소 등에 대한 우려로 속 시원한 만평을 그려내지 못하고 있어 새로운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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