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화백 툭 터놓는 기회 갖자"

형식·내용·크기 과감한 변화 필요…언론사, 시사만화 가치 적극 활용해야



   
 
  ▲ 본보 개최 ‘시사만화가 방담’이 지난 14일 저녁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식당에 열렸다. 사진 왼쪽부터 설인호 화백, 장봉군 화백, 박순찬 화백, 김경호 한국기자협회장, 손상익 대표, 유환석 화백, 민왕기 기자, 박재동 화백, 김용민 화백.  
 

시사만화 기획특집 마지막 순서인 ‘시사만화가 특별 방담’의 내용을 싣는다. 당초 2월말로 예정되었던 방담이 시사만화가들의 사정으로 연기돼 지난 14일 개최됐다. 특정 주제없이 자유롭게 진행된 내용을 발언 순서에 따라 정리했다.


▲참석자
박재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전 한겨레신문
유환석 전 스포츠조선·강원일보
김용민 전국시사만화협회장·경향신문
장봉군 한겨레신문
박순찬 경향신문
설인호 기자협회보·충청투데이
손상익 만화평론가·코믹플러스 대표
사회=김신용 본보 편집국장


김신용 국장=본보가 기획한 시리즈의 마지막으로 방담을 준비했습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토론을 위해 선술집을 택했습니다. 양대 협회(한국시사만화협회·전국시사만화협회) 회원들이 모인 자리인 만큼 진솔한 말씀 나눠주시길 바랍니다.

시사만화 정말 위기인가

장봉군 화백=일단 저는 시사만화가 위기라는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시사만화를 위기로 규정하면 정말로 위기가 될 수 있어요. 반대로 전 지금이 시사만화의 융성기라고 생각해요. 실제 굉장히 우수한 시사만화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거든요. 힘들고 어려워서 출판·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측면도 있지만, 반대로 출판과 각종 전시를 통해 지금처럼 활발하게 활동을 한 시기는 과거에도 없었습니다. 내년 1백주년 사업도 활기차게 준비하고 있구요. ‘시사만화의 위기’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설인호 화백=기자협회보가 다룬 내용은 시사만화 장르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은 아니었습니다. 시사만화가의 위기에 초점을 맞춘 것이지요. 사실 일부 중앙지를 비롯한 지역신문 작가들의 호구지책이 열악하고 그런 점들이 작가들에게는 위기로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밥벌이의 위기는 창작욕에 영향을 끼치고 그러다보면 작품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거든요. 그 때문에 위기라는 말이 나오는 것 아닐까 합니다.

유환석 화백=저 역시 위기라고 말하는데 동의하지 않아요. 과거에는 신문 만화에서 기사나 사설이 하지 못했던 얘기를 건드려 줬지만 현재는 인터넷 매체의 등장, 민주화로 그 역할이 상대적으로 감소한 것도 사실이죠. 그래서 위기라고 말하는데, 신문만화는 여전히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겁니다. 방송 등에도 시사만화가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정당 논평에도 시사만화가 쓰입니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거죠. 위기라고 말하기 보다는 그런 돌파구 찾기가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박순찬 화백=위기라고 보는 것은 지면에서 시사만화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현상적으로는 위기로 볼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시사만화의 수가 준다는 것은 한국 만화의 작가 수가 줄고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만화시장 전반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걸 반증하고 있는 거죠.
과거 4컷의 경우 소년만화에서 활동하다 신문으로 넘어온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소년만화 자체가 유야무야한 터라 작가를 구하기가 힘든 측면도 있습니다. 시사만화의 수적인 위기는 한국만화의 위기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언론사 시사만화 정책 문제 없나

장봉군 화백=문제는 시사만화의 전반적인 위기는 아닐 테지만 현상적으로 일간지 시사만화 화백이 줄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망이나 은퇴로 자연 감소된 측면도 있고 특히 화백과 언론사의 논조 갈등으로 인한 퇴사가 많았어요. 세계일보, 문화일보, 부산일보, 동아일보 등이 그런 경우죠. 젊은 작가들이 대부분 진보적인 성향이다 보니, 보수화된 언론을 못 견디고 나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신문시장 자체가 지나치게 보수화됐다는 생각도 들어요. 만평을 신문의 논조, 선동적인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경향도 있고요. 만평이 논조를 벗어나면 큰일 나는 거죠. 때문에 언론사의 인식도 함께 개선돼야 한다고 봅니다.

김용민 화백=실제로 시사만화가 많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많은 작가들이 열악한 상황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저는 이것을 신문의 영업주의가 시사만화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시사만화가들은 극소수고 언론사 영업 방침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불편한 존재가 되기 십상입니다. ‘신문의 눈동자’를 파버리는 일도 그래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시사만화가 가진 가치를 상업적인 이유로 매몰시키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박순찬 화백=저는 95년부터 4칸 만화를 시작했는데 90년대말 조선일보가 4칸 만화를 처음 없앴어요. 그런데 조선일보가 4칸을 중단하자 다른 신문들도 따라하기 시작했죠. 조선이 없는데, 우리도 안실어도 되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90년대 말 정운경 화백이 왈순아지매를 한창 연재했는데 그 분이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이제 시사만화도 시장논리에 적용을 받게 된다고. 저도 어느 정도 공감을 합니다. 각 신문마다 싣고 싶은 만화가 있고 그 만화가 우리 신문의 특색이라고 하면 싣는 것이죠. 그런데 남들이 싣는다고 싣는 것도 문제지만, 누구도 안 싣는데 우리도 싣지말자는 건 문제가 더 많다고 봐요.

유환석 화백=회사와의 갈등으로 퇴사한 손문상, 조민성, 이재용 화백의 경우를 보면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잘하는 작가들이 소외당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그 작가들의 작품을 다시 볼 수 없다는데 대한 아쉬움도 큽니다. 독자들에게도 아쉬운 일이죠. 크게 보면 ‘매체의 횡포’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시사만화 발전적 대안 없나

손상익 대표=
나는 시각이 좀 달라요. 지금 우리는 신문이라는 파워에 결부시킨 시사만화를 말하고 있잖습니까. 신문이 없으면 시사만화가 존재하지 못한다는 얘기 같은데요.
하지만 극단으로 바뀐 미디어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언론의 역할이라는 로맨틱한 과거 회상을 버려야 해요. 소위 강풀식 독립을 하자는 겁니다. 만화를 한다면, 신문이라는 뒷배경은 빨리 벗어나야 해요. 신문이라는 울타리를 제거해야 합니다. 오래 전부터 시사만화 신디케이트가 거론됐는데, 20세기 미국의 신디케이트는 철저한 상업화의 상징입니다. 한 작가의 만화가 인기가 있으면 서로 가져다 쓰고, 인기가 없으면 그 작가는 담배값도 못벌죠.
여기서 아무리 얘기해봐야 언론사 탓 밖에는 안되는 것 같아요. 쌍방향 미디어 시대인 만큼 자신을 상품화 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장봉군 화백=말씀대로 인터넷 등 뉴미디어들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풍자와 패러디가 선보여 인기를 끌고있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언론 기능과는 분리되어 있습니다. 인터넷은 팩트가 틀려도 상관없죠. 하지만 시사만화가들은 언론 기능을 해야 합니다. 팩트를 충실하게 확인하고 어느 정도까지 비판해야 할지에 대한 훈련도 필요하죠.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씀엔 공감합니다.
다만, 언론사의 고정관념 탈피도 동시에 있어야 합니다. 시사만화가들도 시대적 변화에 따라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신문이 그걸 따라오지 못하는 측면이 더 강해요. 일례로 한창 유행하는 ‘텔미’를 소재로 했더니 편집국에선 이해가 안된다는 반응이 나옵니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형식과 미학에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신문과 부딪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박순찬 화백=인터넷은 질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가볍다는 인상이 짙습니다. 한국사회의 특징 중 하나가 새로운 것이 나오면 그리로 몰려간다는 것인데, 신문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동안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를 거친 매체입니다. 인터넷의 장점과 신문의 장점을 병행해 발전할 수 있다면 좋겠죠.

박재동 화백=저는 시사만화계를 떠나 애니메이션을 하고 있어요. 시사만화를 면밀히 검토하고 있는 상황은 못 됩니다. 다만 현상적으로 시사만화가 위기라는 말을 듣다보니, 고민을 하게 되더군요.
시사만화의 1컷, 4칸 형식은 1백년이나 된 형식입니다. 전통을 소중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형식 변화를 통한 틀깨기가 필요해요. 신문은 과거에 비해 칼라화되고 지면도 굉장히 늘었죠. 제가 활동할 당시만 해도 시사만화 1컷은 지면 면적과 대비해 비주얼 효과가 상당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시사만화가 면적이나 비주얼면에서 어필하지 못한다는 느낌이예요. 인터넷에서 주로 등장하는 톡톡 튀는 패러디 같은 것도 차용할 필요도 있다고 보고요.
언론사와 작가 모두가 생각을 바꿔서 새로운 형식, 새로운 내용, 새로운 크기를 과감하게 시도했으면 합니다.

장봉군 화백=현재 시사만화가들도 형식 개혁을 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런 노력들이 조만간 외형적으로 나타날 것이라 예상하고 있어요. 말씀하신 형식, 내용의 변화는 중요하다고 봐요. 예를 들어 1컷 만화를 와이드하게 그릴 수도 있겠지요.
다만 그런 고민을 실현할 수 있는 그릇 자체에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조선일보는 굉장히 아량이 있었습니다. 광수 생각이 한 예인데요. 언론사들이 시사만화가 가진 가치, 변화하고 있는 시사만화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면 하는 이유입니다.

설인호 화백=시사만화가가 만화가냐 언론인이냐, 묻는다면 저는 그냥 시사만화가라고 답합니다. 이상화된 언론인일 필요도 있고 지식인으로서의 소양도 있어야 한다고 보거든요. 자기 작품이 상품이나 대중적 인지도로 평가되기 이전에, 기본적으로 언론·지식인으로서의 철학이 올바른 방향이어야 합니다.
예술가적인 부분을 너무 강조하지 않았으면 해요. 언론판에서 사실은 사실대로 말하고 신문과 논조가 다르다면 싸워야할 필요도 있죠. 시사만화에 있어 그런 부분은 필요합니다. 표현이나 형식 같은 콘텐츠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시사만화가 가진 무게감이 반감될 수도 있습니다.

박재동 화백=언론인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다만 시사만화도 만화라는 거죠. 엔터테인을 도외시하면 안된다고 봐요. 개그콘서트를 즐겨보는데, 이미 개그맨들이 만화가들의 유머센스를 넘어섰다고 보거든요. 엔터테인이라는 것이 피나는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아요. 시사만화를 보면서 독자들이 웃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도 중요하죠.
또 해외 신문처럼 문화, 스포츠, 연예 등 다양한 분야의 시사만화를 분화해 활용하려는 언론사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시사만화 소통 필요한 때

박재동 화백=시사만화의 발전을 위해서는 각계와의 소통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현실적으로는 각사 편집국장들과의 만나 시사만화에 대해 툭 터놓고 얘기해 봤으면 합니다. 서로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오해가 있다면 바로잡을 수 있는 통로가 있다면 윈-윈할 수 있어요.
또 세계 신문만화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져 국내 시사만화계를 돌아보는 계기도 있었으면 합니다. 

유환석 화백=한국시사만화협회에 소속돼 있어 전국시사만화협회 후배들과 만날 기회가 없었습니다. 20년 만에 처음 만난 자리인데 정말 반가워요. 앞으로도 선후배, 양대 협회의 교류를 통해 시사만화의 발전 방향에 대해 머리를 맞댔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시사만화와 전국시사만화가 함께 가는 것이 살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장봉군 화백=시사만화가 집단은 한국 사회에서 최소 규모의 직업군입니다. 향후 1백주년 사업 하는데 있어 서로 협력하고 시사만화 발전을 모색해야 한다고 봐요.
또 이 자리를 빌어 기자협회 시사만화상 제정도 건의합니다. 1년에 1번이라도 시상해 시사만화가들의 사기를 북돋는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또 시사만화 발전과 미래를 위해 시사만화의 편집권 지켜나갈 수 있도록 협회 차원에서 치열하게 대응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민왕기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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