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가 못다 이룬 큰 뜻, 우리들이 더욱 분발하겠네"

언론 민주화운동 한길을 걸어온 성유보 위원장 영전에

▲9일 오후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성유보 전 동아투위 위원장의 빈소에서 조문객들이 문상을 하고 있다. (한겨레 제공)


성유보 위원장!
 

항상 말투와 걸음걸이가 느릿느릿해 자네는 이 세상 하직도 천천히 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황망히 가시다니 정말 어이가 없네. 우리가 1961년 봄 동숭동 하숙집에서 처음 만나 얼마 전 인천 아시안게임 응원도 함께 갔으니 반세기가 넘도록 같은 길을 걸어온 셈이네.
 

박정희 정권 시절 동아일보 편집부에서 함께 근무하고 있을 때 매일 드나들던 중정 요원의 간섭과 대학생들이 이것도 신문이냐며 신문 화형식을 하는 걸 지켜보면서 울분의 소주잔을 기울이던 때가 기억에 생생하네. 참다못한 우리 동료들이 10·24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하고 공무국에서 닷새 동안 단식농성을 벌일 때도 함께 했었지.
 

자네는 74년 3월 17일 강제해직된 이후에도 자유언론을 위한 투쟁에 항상 앞장섰고 평생을 언론민주화운동의 한길을 걸어 오셨네.
 

이제 이야기지만 나는 자네를 별종으로 생각하고 존경해왔네. 자네는 마음만 달리 먹으면 얼마든지 출세가 보장된 대구 출신 엘리트 아니었나. 그런데도 춥고 고단한 재야의 고달픈 길을 한결같이 걸어온 자네가 옆에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네.


자네가 동아투위 2차 민권일지 사건으로 구속됐을 때 “나라를 걱정하는 민주인사들이 목숨을 걸고 유신헌법 철폐를 주장하고 있는데 우리는 언론인으로서 이를 알릴 의무가 있으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법정에서 당당히 말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네.


▲정동익 사월혁명회 상임의장·전 동아투위 위원장

자네는 길거리의 언론인이 된 이후에도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초대 사무국장을 맡아 ‘말’지 제작을 주도하고 걸핏하면 구류를 살곤 하였지. 그리고 직접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어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사무국장,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정책연구실장으로 맹활약을 하셨네.
 

시골 아저씨 같이 순한 얼굴의 자네가 어디에 그런 강단이 숨겨져 있는지 감탄할 때가 많았네. 자네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외유내강의 표본 같은 인물이었네. 6월 민주항쟁에 일익을 담당했던 자네는 한겨레신문 창간에 앞장서 초대편집위원장을 맡아 다시 언론인의 길을 걸었고 은퇴한 이후에도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장을 맡아 자유언론과 민주화운동의 현장을 지켜왔네. 그리고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이사장을 맡아 통일운동에도 열심인 모습이 우리 모두의 귀감이었네.
 

아직도 할 일이 태산 같은데 이렇게 가시다니 야속하고 아쉽기 그지없네. 자네가 못 다 이룬 큰 뜻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 동지들 더욱 분발한 것이네. 다시 한번 자네의 의로웠던 삶을 가슴이 새기며 진심으로 명복을 비네.

 

2014년 10월 10일 정동익(사월혁명회 상임의장·전 동아투위 위원장)

 

'참언론인 고 성유보 선생 사이버 추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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