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신문업계에선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세상의 변화에 맞서 스스로의 생존을 모색하기에도 벅차하던 한 신문사가 역시 퇴락의 뜰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이들을 격려하고 부축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달 말 한국일보가 창간 51주년을 맞아 ‘문학인의 밤’ 행사를 열었다. 혹자는 이 잔치가 후원업체를 업은 상업적 행사였을 것이라고 폄훼한다. 한국일보가 사업을 통한 자금 모으기에 적극 나서면서 요즘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문학 행사를 연 것은 사세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는 비뚜름한 시선도 있다.
그러나 이번 행사는 그 모든 질시와 무시, 왜곡을 다 품을 만큼 풍성한 의미를 가진 자리였다. 그간 정치 노선이니, 문학 유파니 하는 것들로 갈등해 오던 문인들이 파당에 관계없이 2백여명이나 모여 즐겁게 마시고 담소하며 건필을 다짐했다. 이는 세상에 큰 소문이 나지 않았을지언정 뜻있는 문화인과 언론인들의 가슴에 큰 울림을 준 일대 사건이다.
새삼 되뇔 것도 없이 오늘날 인쇄매체의 대표주자인 신문은 디지털 시대의 화려한 영상매체에 밀려 생존의 위기에 처해 있다. 그 중 한국일보가 겪고 있는 경영난은 긴 장맛비처럼 업계 전체를 우울한 분위기로 몰아왔다.
그런 한국일보가 그동안 좋은 글을 써 준 문학인들에게 한 턱 내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니 그 의미를 새기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일보는 지난 50여 년 간 이 땅의 문예중흥을 이끈 큰 마당이었다. 문학사의 중요한 작품들이 이 신문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월탄 박종화의 ‘삼국지’, 황석영의 ‘장길산’, 조정래의 ‘아리랑’, 박완서의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최인호의 ‘상도’ 등등.
현재 언론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386세대는 1980년대 한국일보 문화부가 연재했던 ‘문학기행’을 기억한다. 군사정권의 폭압 때문에 도무지 고개를 들기도 힘들었던 시대, 문학기행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문장에 기대어 겨우 숨을 쉴 수 있었고, 어떤 이들은 그 때문에 신문기자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디지털 문명의 폭풍으로 신문업계가 위기를 맞은 것처럼 문학도 죽음을 운위하게 됐다. 사람들은 이것이 세상의 흐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뜻있는 이들은 신문은 깊이 있는 뉴스를 통한 세상보기의 다양함을 위해서, 문학은 정신적인 풍요와 사색의 즐거움을 위해서 반드시 부활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물론 후자의 믿음에 손을 맞잡고 싶다.
현재 이 나라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거나 앞으로 담당할 세대들이 문학을 멀리하게 된다면 결국 말초적인 감각과 효용성에 기초한 사이비 문화만 판치게 된다. 한국일보는 사색과 정신의 고양을 기피하는 시대의 부박한 경향에 맞서 신문과 문학이 연대하겠다는 의지를 극적으로 보여줬다.
연대의 정신은 앞으로도 구체적으로 지면에 반영돼야 한다. 신문은 문학이 심미적 쾌락과 더불어 인간의 질서와 도덕적 비전을 제시하는 문학 본래의 정신을 지킬 수 있도록 버팀목이 돼 줘야 한다. 더불어 문학이 디지털 시대의 변화하는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끊임없이 제시해줘야 한다.
한국일보가 문학 중흥을 이끌어 한국 언론의 거멀못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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