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하는 선후배·동료들을 보며

전, 현직 기자들의 전직이 화두가 되고 있다. 얼마 전 한 방송사의 전직 앵커가 삼성그룹의 임원으로 가는가 하면, 최근에는 신문사 부장과 전문기자들이 대거 정부 부처 홍보담당관으로 전직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 사회에서 언론인들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반증이다. 선후배·동료 기자들이 현실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해, 그들을 붙잡을 수 없는 우리들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기자를 전문직이라고 부르는 데 이견을 갖고 있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전문직이라고 부르려면,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추는 것은 물론 독립적인 지위나 그에 따른 소명의식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냉정히 보면, 한국 사회에서 기자들은 독립적인 지위와 소명의식이 부족한 게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수많은 선배 기자들이 선거철마다 정계로 진출하고, 이후 다양한 인맥과 정보력을 바탕으로 청와대 요직을 맡거나 정당의 수뇌부 노릇을 해왔던 것도 한국의 기자사회를 비판할 때 단골로 등장한 메뉴였다.



의사와 변호사 같은 전문직이 되려면, 우선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자기만의 일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기사를 쓰는 기자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물론 구조적인 한계가 있는 것은 인정한다. 구미 선진 언론과 달리, 기사의 편집권과 보도의 편성권을 보장받지 못한 상황에서는 기사를 자율적으로 내보내기 어려운데다 사주로부터 언제든지 해고나 징계 등을 당할 수 있는 불리한 고용환경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설사 해당분야의 전문지식이 부족하고 독립적인 지위를 보장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기자는 반드시 실천해야 할 과제를 지니고 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언론과 출판의 자유는 수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세상과 인권수호를 위해 희생하고 투쟁한 역사의 결과물이다.



영국의 존 밀턴은 1600년대 당시 영국 국교회의 권위에 저항해, ‘에어로-페지티카’를 발행하고 언론, 출판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반해 우리는 1980년대까지도 군부독재 정권으로부터 언론 탄압을 받았고, 이른바 ‘보도지침’이란 미명 아래 언론으로서의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불행한 과거를 갖고 있다.



다행히 ‘소명의식’을 갖고 있는 일부 선배언론인들의 노력으로 정권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이뤄질 수 있었고, 그에 따라 언론 민주화가 어느 정도 실현됐지만 '발전'의 사각지대, 또는 소외된 인권에 대한 관심과 존중 등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언론의 역할과 책임은 여전히 막중하다.



언론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덕목은 바로 소명의식과 사명감일 것이다.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 혹은 사명감은 전문지식이나 독립적 지위 못지 않게 반드시 수반돼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전·현직 기자들이 생존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따라 정부 산하 각급 부처 홍보담당 공무원으로 전직하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전문직으로서 기자직을 수행하다가 타의에 의해서, 혹은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떠밀린' 자의에 의해서 '언론판'을 떠나게 된 그 기자들이 향후 공공부문에서 어떤 바람직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지, 혹 과거와 같은 '관언유착'의 첨병역할을 하는 것은 아닐지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올바른 기자상을 정립하고 제대로 된 전문가 집단을 만들려는 노력은 남은 기자, 떠나는 기자 모두에게 부과된 시대적 책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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