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와 가족들의 박수를 받으며 현장을 떠나가는 정년퇴임자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평생을 살아 온 개인사를 이야기하지 않아도 그의 삶이 사회와 가족 모두에게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는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평범하면서도 당연하기까지 한 이같은 모습이 최근 들어 우리주위에서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오히려 아무런 준비 없이 직장을 나서는 동료들의 모습을 아프게 지켜보는 일들을 자주 겪게 되고 알게 모르게 그들의 고통을 애써 외면하는 버릇까지 생기고 있다.
더욱이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경제적인 비용이 가장 많이 소요되는 시점에 예고 없이 다가온 실직자의 모습을 보면서 언제가 자신에게도 올지 모를 불안감에 술잔을 기울이게 된다.
IMF 이후 조기실직을 우려하고 대규모 구조조정을 냉철하게 비판해 오던 언론계도 예외는 아니다. 가장 노동자적인 신문으로 출발한 한겨례의 구조조정에 이어 스포츠신문들의 ‘제2의 칼바람’, KBS, MBC의 인력구조조정 소식은 붓을 잡은 손의 힘을 빼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대규모 구조조정 현장마다 자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외쳐왔고, 고통분담, 임금피크제 등의 대안을 제시했지만 정작 언론인들의 퇴직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불의와 대항하며 온갖 협박에도 불구하고 펜을 놓치 않고 언론자유를 위해 청춘을 바치고 회사를 위해 밤잠을 설치며 목소리를 높이던 선배와 동료가 어느날 갑자기 회사를 떠나는 모습에서 희망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더욱이 떠나간 동료들이 소식을 끊다가 어느날 불쑥 ‘나도 살아야지..’라며 내민 명함이 언론과 전혀 상관없을 때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의 바람과 달리 언론사들마다 최악의 경영위기를 맞아 하나둘씩 우리 곁을 떠났고 지금도 경영합리화의 방안으로 퇴직을 요구하고 있다. 내 자신이 피하면 동료가 대상이 돼야 하는 엄혹한 현실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최근 명예퇴직제 시행과 맞물려 MBC가 이직과 전직을 도와주는 ‘아웃 플레이스먼트(out placement 퇴직준비과정)’ 제도를 도입한다는 소식은 작은 위안이다.
‘IMF 체제’ 이후 대기업이나 공기업을 중심으로 ‘아웃 플레이스먼트’ 제도가 도입되기도 했지만 언론사의 경우 지난해 12월 한겨레신문 이후 방송사 중에서는 MBC가 처음이다. 퇴직자의 성공적인 진로개척을 위한 교육, 훈련, 컨설팅, 사무실 제공 등 행정적 지원을 포함한 종합 서비스로 첫 ‘수강생’은 지난 5월말 명예 퇴직한 직원 3명과 정년 퇴직예정자 6명 등 모두 9명이라고 한다.
이 제도가 퇴직 이후 새로운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직원들의 심리적 안정을 유도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지만 근본적인 대안이 아님은 명확하다. ‘아웃 플레이스먼트’ 제도가 퇴직자들에게 물질적·비물질적 혜택을 제공해 실직의 충격을 줄이고 새로운 직장을 찾도록 도와주는 서비스인 것은 분명하지만 근본적으로 중도탈락자가 아닌 정년퇴직자가 대상이어야 한다.
우리는 여기서 무조건적으로 모두의 정년보장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구조조정을 결정하기 전에 정말 대안이 없는지를 노사가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회사는 명예퇴직과 정년퇴직을 구분하지 않고 청춘을 바친 언론인의 전직에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 우리의 선배와 동료들의 뒷모습을 아름답게 만들어야 한다.
편집위원회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