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체 첫 발걸음을 주목한다

오늘도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의 양을 이루 다 헤아리기 어렵다. 정보 고속도로를 내달리는 속도는 두 눈으로 붙잡을 수 없을 만큼 거세다. 인터넷미디어의 질풍노도 속에서 저널리즘이 휘청거리고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보의 선별자' 신문이 고민하고 있다.



바야흐로 우리 사회의 의제를 독보적으로 규정하며 언론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신문이 새로운 변신을 할 때가 온 것이다. 신문 변혁의 당위성은 안팎에서 요청 받고 있다. 신문은 지식정보의 가공 생산품으로써 철저하게 산업과 신문 시장의 논리에 지배받으면서 동시에 시대담론의 증폭장치로 기능하는 이중성의 산물이다.



디자인과 브랜드시대가 밀려왔다. 모든 산업주체들은 제각각의 브랜드와 디자인을 갖지 않으면 시장서 생존하지 못한다. 신문이 정보의 전달자로 명색을 유지하는 시대는 갔다. 치열한 신문시장은 개별 신문들의 질적 양적 차별화 편집을 당연히 요구한다. 최근 한국의 신문들이 신문디자인에 눈을 떠가는 기미는 환영할 만하다. 신문을 하나의 브랜드로 규정하고 제작 컨셉을 분명히 가시화하는 편집시도는 늦었지만 반가운 일이다. 이제 신문은 디자인으로 자신의 의제를 표현해야하는 시기가 닥친 것이다. 신문이 뉴스의 제1보를 터뜨려 성가를 증명하는 시대가 가고 자신의 분석과 전망을 힘찬 디자인으로 갈무리해 선보이는 뉴 저널리즘시대가 온 것이다.



지난 5월 15일 한겨레신문이 창간 17돌을 맞이하여 큰 실험을 내보였다. '한겨레체'를 선보인 것이다. 한겨레체는 한겨레 지면 본문에서 제목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표현되고 있다. 내부에서는 한겨레 결체 (줄여서 한결체)라 부른다 한다. 기존 모든 신문의 글자는 일정한 네모꼴 내에 갇혀있다. 독자들 또한 이 네모꼴 타이포그라피(글자꼴 디자인)에 익숙하다. 하지만 우리 모국어의 본체인 한글은 원래 초성 중성 종성이 합쳐져 조형미를 빚어내는 문자이다. 수 만 가지 글씨가 가로 세로 다양한 크기가 표현되는 것이 한글의 본래 자연미이다. 그런데 한글은 대량인쇄와 전산화에 간편하다는 이유로 획일적인 같은 크기로 일색화되어 왔다. 한겨레체는 바로 이 지점에서 혁신을 시도한 것이다.



그동안 일정 규격 안에 모든 글자를 우겨 넣는 모아쓰기 관행은 한글 타이포그라피의 다양한 발전을 막아왔다. 신문의 글자는 국민들의 일상적 정보습득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매개체이다. 한겨레체 도입은 이 신문 글자체 발전의 한 지평을 연 것이다. 하지만 시도는 완결되어야 의미가 있다. 한글이 획일적인 네모 틀에 갇혀져 일일이 모든 자수를 다 읽어야만 어휘 의미가 획득되는 인지과정에 우리들은 길들여져 왔다. 하지만 한겨레체는 글자 낱말이 생긴 대로 들쭉날쭉한 상태로 다가오기에 시각 이미지가 먼저 발걸음을 한다.



한글의 조형성을 살리려는 한겨레의 용기는 현재진행형이다. 한겨레체의 성공은 독자들에게 얼마나 빨리 친숙하게 다가가는 지 여부에 달려있다.



어색하다 엉성하다 자갈처럼 거칠어 보인다 신선하다 진정한 가로쓰기의 완성이다... 아직 한겨레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하지만 우리는 '제2의 창간'이란 다짐으로 컨텐츠혁신에 나서는 한겨레의 결심이 편집상으로 한겨레체의 시도로 나타난 것으로 평가한다. 남들이 위험하다고 가지 않는 길을 가는 한겨레의 큰 용기에 격려를 보낸다. 한겨레는 아직 한겨레체의 완전한 개발이 완료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제목으로 선보이는 한겨레체는 글꼴의 삐침이 날카로워 아직 편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지면 칼럼이 넓을 때는 시원해보이지만 칼럼이 좁을 때는 위태롭게 보인다. 나라 말과 글을 더욱 드높이려는 이번 시도가 다른 신문사에도 번져 한국 신문디자인의 지평이 활짝 넓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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