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용 전무께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안녕하십니까? 회사 일로 아주 바쁘시죠? 늦게나마 스카우트되심을 축하드립니다. 솔직하게는 섭섭하고 서글픈 마음이 더 큽니다. 언론과 문화를 공부하는 학자로서, 공영방송사 최고의 앵커가 최대 재벌의 임원으로 자리 옮긴 것을 어떻게 학생들에게 전해야 할지 우선 갑갑했습니다. 궁금한 게 많습니다.



그래서 늦게나마 편지를 씁니다. 물론 전무께서는 저를 잘 모를 겁니다. 저도 뭐 전무님에 관해 제대로 아는 게 없습니다. 텔레비전에 앵커로 나올 때 자주 봤고, 선한 외양과 차분한 말투의 기억이 많은 정도입니다.



이 편지를 쓸려고 이 전무께서 남긴 흔적들을 인터넷 이곳저곳에서 뒤져 봤습니다만, 충분치 못합니다. 그러기에 편지 보내는 제가 전무님의 뜻을 오해한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넓은 아량으로 봐 주십시오.



자리를 옮길 때 주변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지 모르겠으나, 이렇게 공적으로 질문 받는 것은 아마 처음 아닐까 싶네요. 분명 전무님의 삼성 행은 개인의 사적인 선택입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앵커라는 공적인 인물의 공론적 사안임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번을 계기로 앵커의 전문성, 기자의 양심, 저널리즘의 독립성에 관해 자본이라는 새롭고 훨씬 강력한 권력을 맥락으로 해서 깊이 따져봐야 한다는 게 주변 연구자들의 의견입니다.



사실 전무께서도 자신의 삼성 영입을 사회와의 커뮤니케이션 활성화를 위함이라고 적극 풀이하지 않았던가요? 사적인 밀담이 아닌 공적인 소통, 감정적 다툼이 아닌 이성적 대화의 제안이었겠죠. 그래서 전무님의 진정성을 믿고 먼저 말 걸어봅니다. 삼성이 왜 이렇게 기자들을 끌어 모으는 건가요? 삼성전자 홍보라인에 올해만 전무를 포함해 5명의 기자가 <동아일보>, <한겨레> 등에서 투입되었더군요. 전례 없는 인력 투자인 것 같습니다. 물론 삼성은 다른 데도 투자를 아끼지 않습니다. 최근 서울 몇몇 사립대학에 수 백 억씩 물량 공세를 하는 것 잘 보고 있습니다. 탁월한 전략이었죠. 선심 베푼 것을 두고 다른 어느 재벌도 못한 일이라 칭찬이 자자하더군요.



보수 신문들이 대서특필하고, 시혜 받은 대학교수들은 머리 조아려 황송해 하지 않았습니까? 회사의 입장에서 사회 홍보, 여론 순화의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었겠죠. 그러면서 방송과 신문의 ‘유능한 인재’들을 대거 홍보 강화라는 이름으로 규합하니, 그렇게 홍보가 급한가요? 삼성 프로 야구와 축구팀이 좋은 선수들을 싹쓸이 해 ‘호화군단’을 꾸린 것과 같아 보입니다. 스포츠에서와 마찬가지로 홍보에서도 ‘일등정신’을 구현하겠다는 건가요? 아니면 더 깊은 뜻이 숨어 있는 것인가요? 기자들을 전문가로 영입할 때, 대체 이들을 동원해 홍보 즉 광고 즉 선전할 상대는 정확하게 누구입니까?



<오마이뉴스>가 “삼성이 자본을 앞세워 기자사냥”에 나섰다고 비꼬는군요. 다른 신문은 “인재 포획의 그물망이 얼마나 깊게, 그리고 폭넓게 작동”하는지 잘 보여준다고 표현하더군요. 어떻든 기자의 양식, 저널리즘의 가치, 전문가의 직업윤리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라고 느껴지더군요. 기자가 자본의 사냥감이라뇨? 기자 양심이라는 게 무슨 물건이라도 되는 겁니까? 기자가 한국 최대 기업에 대체 뭘 ‘수혈’합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비난을 그 좋으신 말솜씨로 날려주시길 바랍니다.



‘젊은 피’ 수혈을 위해서라는 둥 온갖 변명을 늘어놓으며 권력의 품으로 뛰어든 기자들보다도 한참 깔보는 이런 언사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이번 영입이 회장 후계 구도와 관련 있다는 입방아들에 관해서도 확실한 답변 부탁합니다. 마지막으로 여쭈어봅니다.



일방주의 자본, 신자유주의 국가가 소외시킨 수많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누가 홍보 도우미가 될 수 있을까요? 이들의 억눌린 목소리, 희생된 행복을 위해 방송사, 신문사에 남겠다는 후배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 주시렵니까? 현실을 택하라고, 돈의 논리를 배우라고, 이제는 자본의 시대라고 따끔하게 조언이라도 해 주시겠습니까? 오랫동안 언론학 개론에서 전무님 사례를 참 좋은 주제로 삼아 공부하게 될 것 같습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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