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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욱 한국언론재단 책임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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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북부 유럽이나 북미 국가들에 비해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등 남부 유럽 국가에는 언론인의 전문직주의(professionalism)가 덜 발달되어 있다.
약간 차이가 있긴 하지만 프랑스도 그런 나라의 하나다. 서 유럽과 북미 18개 국가의 미디어 시스템을 비교 분석한 홀린과 만치니*에 따르면 이런 나라에서는 방송 등 다른 미디어에 비해 신문이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고, 정치권력이 언론을 도구화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나라들은 대체로 사회적 합리성과 투명성 수준도 낮다.
전문직주의가 덜 발달되었다고 해서, 언론인의 교육수준이 낮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나라의 언론인들은 교육 수준이 높고 엘리트 의식이 강하다. 유명 작가나 정치가도 많이 배출하고 있다.
언론인의 전문직주의는 특정 영역에 대한 지식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언론인이 전문직이라는 것은, 취재와 기사 쓰기 등 기본기는 물론 저널리즘의 역사, 미디어의 영향과 효과, 언론 윤리 등 공적 커뮤니케이션 담당자가 알아야할 지식을 갖추었다는 것을 말한다.
한국 언론인들의 전문직주의 수준이 높다고 보기 힘들다. 그 때문일까. 한국에서는 언론인이 담당해야 할 자리에 비전문인들이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 결국 오래 가진 못했지만 철학자 김용옥이 문화일보 ‘기자’로 활동한 바 있다. 최근에는 경향신문이 ‘카수’ 조영남에게 한 면씩을 내어 주고 있다.
KBS 2TV의 정보 프로그램 ‘세상의 아침’에서는 개그맨 배칠수가 사회 부조리에 대해 준엄한 어조로 호통을 치고 있고, MBC TV의 미디어비평 ‘암니옴니’에서는 개그맨 이윤석이 만평을 소재로 소리 높여 정치 비평을 하고 있다. 나는 교수, 가수, 개그맨이 언론인으로 전직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저널리즘의 지평을 넓힐 수 있어 오히려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단지, 그들이 전문직에 필요한 교육을 받거나 어떤 형태로든 그런 지식을 습득하길 기대할 뿐이다. 현직 가수나 개그맨이 기사를 쓰고 정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 자체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 단지, 그에 상응하는 역할과 형식이 주어져야 한다. 나는 ‘엄숙주의’가 저널리즘의 덕목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비전문적 ‘언론인’들에 의해 진지함, 메시지의 진실성에 대한 두려움, 신중성과 같은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이 손상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지면과 방송 시간만 주면 언론직을 수행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전문직 언론인이 설 자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기야 언론인들이 자초한 부분도 있다. 의학기자가 의학적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음료수 광고에 등장하고(홍혜걸), 방송 앵커가 마치 현장 중계하듯 자동차 광고를 해도(백지영) 크게 문제 삼지 않을 정도로 한국 언론인들의 전문직주의가 약하기 때문이다.
미디어가 사회의 핵심적인 산업 영역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논의가 가능한 공공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한 해답이 보이지 않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전문직 언론인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 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가 언론인을 전문직으로 인정하고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 그 전제는 물론, 언론인 스스로가 전문직의 덕목과 질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D. C. Hallin, P. Mancini: Comparing Media Systems. Three Models of Media and Politics,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4) (김영욱, 한국언론재단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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