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와 정연주




  전규찬 교수  
 
  ▲ 전규찬 교수  
 
요즘 방송계는 KBS와 정연주 사장을 빼놓고 이야기가 안된다. 일본 산케이 신문과 턱 하니 인터뷰를 해놓은 조영남이 자기변명을 하기도 바쁠 텐데 KBS로 불똥이 튈까봐 노심초사할 정도다. 문광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이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집단 퇴장한 사건이 터진 직후라 모두가 여간 예민하지 않다. 뭔가 대폭발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초 긴장상태다. 수상쩍은 분위기가 팽배하고, 온갖 쑥덕공론이 무성하다.



사실 말하기 얼마나 재미있는가? 노선을 달리하고 이해관계가 다른 노조가 노골적으로 반발하고, 감사라는 자는 사장의 정치 편향성 때문에 수신료 인상의 숙원이 어렵게 되었다고 공개적으로 원망한다. KBS가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고, 이렇게 조직을 뒤흔들어 놓은 장본인이 바로 정 사장이라는 비난을 조직 2인자가 공공연히 표시한다. 대단하지 않은가?



신문들은 이런 잡설을 갖고 정 사장과 KBS를 집요하게 때린다. 정권에 대한 적대적 의식이 일정하게 작용하겠지만, 그렇게 하는 게 대중의 호기심을 끌 수 있다는 실리적 계산도 무시할 수 없어 보인다. 직원들이 법인카드로 안마시술소 비용을 결제했다는 주장은 패러디 논란에서 이어진 선정적 담론사슬의 최근 사례에 불과하다. 한나라당이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겠다고 난리다. 6백38억 적자상태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사장을 문책하겠다고 버리고 나섰다. 총궐기 태세다.



KBS의 대응이 궁금하다. 사장에게 보고 되지 않은 감사팀 자료가 야당의 손에 어떻게 넘어갔는지 따지는 게 급선무일까? 소용없다. 내부의 적이 무수히 많은 게 사실이겠지만, 이들을 도청하고 색출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유용한 액수가 사우나에 갈 정도라는 변명도 궁색하기 짝이 없다. 화장실 좀 개선하라는 여당 의원의 농담 섞인 질문에 인권 차원에서 서두르겠다고 답하는 것만큼이나 수준 이하다. 그런 식으로 지지 여론을 끌어낼 수 없고, 상황을 돌파할 수 없다.



수구 세력이 KBS 흔들기, 정연주 죽이기의 고삐를 바짝 조이고 있는 상태에서 유일한 카드는 딱 하나, 개혁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뿐이다. 과체중증에 시달리는 노회한 공룡의 자기변신 노력에 박차를 가하는 일이다. 그럼으로써 수구 매체, 보수 야당이 아닌, 이성적 다중으로부터 정당성을 획득하는 게 전략이라면 전략이다. 요컨대 개혁이 정답이며, 그 밖에 위기관리의 묘책은 없다. 개혁이 앞서야 하고, 그래서 공영성과 공익성이 확보되어야 하며, 그래야 수신료 인상요구도 자연스레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지금은 80∼90년대와 다르고, 신자유주의에 맞서 KBS를 보호하는 게 공영성 강화의 길이라는 주장은 옳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개혁을 통해 공영성을 강화하고 또한 다원성을 통해 시청자의 공익에 서비스하는 재배치의 구상이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더욱 타당해 보인다.



정면 돌파하라. 이기주의로 뭉친 낡은 체질, 구질서의 KBS는 해체되어야 한다. 거대관료구조, 일방독점체제는 해소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구조조정의 내용이고 전망이다.



정 사장은 “구조 조정할 수 있는 칼만 만들어 달라”고 했다. 내부 반발 속 얼마나 답답하면 그랬을지 이해되는 측면도 있지만, 여전히 비수는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예리하게 간 칼로 두터운 지방질을 떼어내고 그래서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역사적 판단은 그가 얼마나 ‘개혁하라’는 시대의 과제를 성실히 수행하여 KBS 조직이 아닌 방송의 공익성을 구해 냈는지 여부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다. ‘개혁을 통한 공익성 강화’가 궁극적인 잣대다.



벌써 정 사장 취임 2주년이다. 임기가 1년밖에 안 남았지만, 게임은 이제 시작이다. 팀제로 구체화된 변화의 그림이 얼마나 지속되고 어떻게 다양하고 품질 높은 프로그램들로 실현될지 시청자들은 주시한다. 이들의 기대를 정 사장은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눈치 봐야 한다면, 그것은 노 정권도, 야당도, 보수 신문도, 더욱이 KBS조직도 아니다. 예리한 시민의 눈이고 감각이다. 역사적으로 검증된 정확한 판단력이다. 다른 것은 아무 것도 기대하거나 믿지 말라.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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