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노조가 불법녹취의 책임을 물어 정연주 사장에게 자진사퇴 요구서를 전달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출근저지투쟁에 돌입하겠다고 밝히면서 불법녹취 파장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노조는 사퇴요구서를 통해 “정 사장이 노무팀 직원에게 직접 녹취를 지시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수집해 온 정보를 계속 받아오지 않았느냐”고 지적하며 불법녹취에 대한 진상규명에 한발 나아가 도덕적인 결단을 촉구하고 나서면서 이번 사건이 쉽게 마무리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불법녹취 사실에 강한 분노를 표시했던 KBS 구성원들이나 언론·노동단체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노조측의 정 사장 퇴진요구에 대해서는 다소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불법녹취라는 명백한 불법사실을 두고 언론·시민단체들이 곧바로 노조에 동조성명을 내지 않고 있는 것은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한 목소리로 도덕적인 결단을 요구해 오던 이전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언론단체들이 이같은 입장을 취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정 사장 책임의 수위를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운 변수들이 있기 때문이다. 노조의 지적대로 정 사장이 불법녹취를 통해 얻은 정보를 보고 받아오고, 또 대응한 측면이 있다면 정 사장은 도덕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정황에도 불구하고 정 사장 퇴진 문제에 대해 언론·시민단체들이 유보적인 입장을 나타내는 것은 현시점에서의 정 사장 퇴진요구가 KBS 개혁에 과연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이다.
KBS 기자회가 불법녹취가 폭로된 직후 성명에서 노조와 다소 다른 입장을 보이는 것도 이같은 점을 우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KBS 내부의 이견과 단체들의 서로 다른 입장에 대해 옳고 그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KBS 노조에 대해 경영진이 보여준 그간의 태도에 대해서는 강한 아쉬움을 느낀다.
사실 이번 사태는 노조 출범 때부터 예견돼 왔으며 경영진과 노조는 사사건건 대립해왔고 이 대립의 원인에는 정 사장의 노조에 대한 불분명한 태도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지난 1월 첫 협의회에 사측 대표인 부사장이 불참한 것이나 중요한 개혁안을 노조와 협의하지 않은 것도 갈등의 골을 깊게 한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현 상태에서 이번 문제가 쉽게 해결되기를 바랄 수 없지만 우리는 이번 문제가 KBS 구성원들의 단합된 힘으로 슬기롭게 해결되기를 희망한다. 그동안의 불신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과정 속에서 구성원들 간의 합의 속에 KBS의 개혁안이 만들어지고 추진될 필요가 있다. 경영진이나 노조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 진행되는 개혁은 실패할 확률이 높은 만큼 경영진들은 노조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버리고 노·사가 대결의 상대가 아닌 상생의 대상임을 인식해야 한다.
‘한사람의 열 걸음 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수월하다는 평범한 인식 속에 불법녹취 사태로 최악의 위기에 직면한 KBS 노·사가 국민들이 납득할만한 해결책을 스스로 제시해 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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