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살이의 곁에서 무엇인가 사라지는 풍경은 애틋하다. 변화의 속도가 빠른 시대에 살고 있는 탓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신문 가판이 사라진다는 소식을 듣는 심사는 아쉽다기보다 후련하다는 느낌이 앞선다.
가판신문이란 가정에 배달되기 전날 저녁 주로 서울 시내 가두 판매용으로 발행되는 초판신문을 말한다. 이는 분명 가판(街販)이건만, 가판(假版) 역할을 해 왔다. 신문사들은 다음날 독자 손에 들어가는 신문을 미리 만들어 경쟁사의 제품과 비교한 다음 새 소식을 채워 왔다. 이는 오보를 거르고, 지면의 완성도를 높이는 순기능을 해 왔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빨리 알고 싶어하는 일부 독자에겐 하루 일찍 기사를 본다는 충족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러나 미디어환경이 변하면서 가판 소식은 더 이상 빠른 소식이 되지 못하고 있다. 방송, 인터넷의 속보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신문사에서 가판을 낸 후 자사 홈페이지에 올린 뉴스를 본 독자들은 다음날 아침 종이신문을 통해 ‘구문(舊聞)’을 접하는 상황이 됐다.
더욱이 가판은 일반 독자보다 관공서, 대기업의 홍보 관계자들이 미리 보고 기사 로비를 하는 창구가 돼 왔기 때문에 비판을 받아왔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후 정부부처에 “가판을 보지 말라”는 말로 참여정부의 언론개혁 의지와 도덕성을 과시하기도 했다.
신문업계는 노 대통령 발언 이전에 이미 ‘가판(街販)이 가판(假版)이 되는’ 현실에 자경(自警)의식을 갖고 있었다. 전날 가판을 낸 후 각 신문들이 서로 비교해보는 과정에서 ‘베끼기’가 관행화하면서 도무지 개성을 찾을 수 없게 된 것을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게 된 것이다.
중앙일보가 지난 2001년 10월 가판을 폐지한 것은 자성의 필연적 결과였다. ‘전날의 시험 제작이 아닌 오늘의 조간으로서 신문개혁의 선봉이 되겠다.’ 이런 다짐으로 중앙일보가 가판을 없앤 지 4년 여 만에 조선, 동아일보가 그 뒤를 잇는다고 한다. 다른 신문들도 곧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대로 산 채로 매장될 것이냐, 아니면 스스로 죽어서 영원히 살 것이냐. 우리는 가판 폐지가 신문업계에 생산적 논의의 마당을 마련하고, 신문들이 자기만의 색깔을 찾아 경쟁력을 갖추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신문이 사양산업 대열에서 빠져나오려면 독자 수요에 맞추되, 경쟁 미디어에 비해 훨씬 깊고 넓은 시각으로 기사를 생산해내야 한다. 심층 기획을 통해서 독자에게 심판 받겠다는 태도야말로 급변하는 미디어환경에서 신문이 생존할 수 있는 길 중의 하나다. 이제 신문은 분석, 해설, 전망 뉴스로 승부하겠다는 분명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긴 호흡으로 독창성과 정확성을 높인다면 독자들은 앞으로도 신문을 찾게 될 것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신문의 미래는 없다. 따라서 가판 폐지 이후의 신문업계 움직임이 중요하다. 경영진 뿐 만 아니라 신문업계 종사자, 특히 기자들이 비상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와 관련, 최근에 각 신문의 1면이 개성적으로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 언론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가판 폐지를 계기로 신문업계에도 봄날이 다시 찾아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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