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신문발전법'을 다시 생각한다

멍하여 힘이 빠지고 일이 손에 안 잡히는 심리 상태를 ‘허탈하다’고 한다. 지금 지역신문 종사자들은 사전적 의미의 말 그대로 ‘허탈’ 한 상태다. 지역신문과 언론단체들이 모처럼 지난 해 한 목소리로 요구하고, 국회가 동의해 만들어낸 지역신문발전법이 아무런 의미 없는 법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지역신문발전기금이 정부 예산안에 포함되지 않은데다 예비비로 2백50억원을 확보한 것도 분통이 터지는 일인데, 이것마저 기획예산처가 기금보조는 불가하며 융자로 운용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참으로 유감스럽다. 정부도 이 같은 방침에 보조기금을 마련해 일부는 보조하고 나머지는 융자형식으로 지원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역신문과 언론단체들의 허탈감은 이제 분노로 이어지고 있다.



융자를 골자로 하는 지역신문발전법은 지역신문의 변화와 개혁에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고 고사직전의 왜곡된 지역신문의 구조개혁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또 참여정부가 그토록 소리 높여 외치고 강조해 왔던 ‘분권’의 한 축도 무너질 수밖에 없고 궁극적으로는 국가의 균형발전과 개혁의 성공도 힘겨울 수밖에 없게 됐다. 융자를 받아 신문을 정상화시킬 수 있는 경영구조를 갖고 있다면 우리는 이 법의 제정을 어쩌면 요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역신문발전위원회가 “고사위기에 처한 지역신문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융자 형식의 지원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결국 이 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의견서를 제출하고 전국언론노동조합이 “기금이 융자로 운영될 경우 전면 거부하겠다”고 밝힌 것도 지금의 지역신문이 융자로는 변화와 개혁을 기대할 수 없음을 반영한 것이다.



정부는 지역신문이 처한 현실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지역신문발전법 제정 취지가 무엇인지를 신중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경영자는 참으로 민감할 수밖에 없다. 경영을 공개하는 것은 그에 상응한 이유가 있어야 하지만 지역신문에 대한 융자가 경영자들이 그동안 누려온 비정상적인 권력을 포기할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는 의문일 수밖에 없다. 결국 융자 방침은 지역신문의 개혁과 변화의 핵심인 지역신문발전법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밖에 없으며 그 움직임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지역신문발전법이 만들어지고 지역신문발전위원회가 구성되자 지원조건에 맞추기 위해 독자명부를 작성하고, 편집위원회 구성과 편집국장 임명동의제를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받아들였던 경영진들이 기획예산처의 ‘융자’ 방침이 발표된 뒤 조금씩 태도를 바꾸고 있다.



일부 경영주는‘그럴 줄 알았다’며 언론노동자를 조금씩 옥죄고 변화와 개혁을 주도해 온 간부들에게 ‘먹고 살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논리로 재갈을 물리려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우리는 이번 융자방침이 언론노동자들의 설자리를 점점 좁히고 있음을 우려한다. 지역신문발전법이 획일화된 한국의 언론구조와 왜곡된 지방언론의 구조적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것임을 다시 한번 인식하고 지금이야말로 지역신문과 지역언론인들이 역사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는 기회임을 강조한다. 참여정부가 진정으로 분권을 원하고 지역균형발전과 한 단계 진전된 민주주의를 만들겠다면 지역신문발전기금에 대한 융자원칙은 수정돼야 한다. 법이 허용하지 않는다고 말하기 전에 법을 고쳐서라도 직접지원이 가능한 방법을 앞장서 제시해야 한다. 편집위원회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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