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사회의 갱신




  전규찬 교수  
 
  ▲ 전규찬 교수  
 
폴 비릴리오의 <정보과학의 폭탄>이라는 책이 있다. 여기서 이 프랑스 이론가는 ‘지구 전체 규모의 시각’ 시대가 도래했다고 주장한다. 예전에 쉽게 볼 수 없었던 것들을 가시화시켜주는 시각에 힘입어 원격 감시가 24시간 일반화되었다는 것이다. 감시의 시각은 이제 공간적으로 크게 확산되어 전지구적으로 작동할 뿐만 아니라, 미시적으로 인간의 몸을 철저히 가상화한다.



텔레비전 등 매체를 통해 작동하는 가상적 시각이 대체 지평선 너머 끊임없이 확장된다. 인간의 내부, 개인의 육체를 표적으로 삼는 지독한 호기심과 탐욕스러운 눈길에 대해 사회는 철저히 무력하다.



‘시선에 대한 규제 철폐의 시대’가 인간에게 줄 치명적 효과성을 비릴리오는 폭탄에 비유한다. 인간 신체는 미디어/정보/과학의 발전이 놓은 덫에 단단히 걸려있다. 누가 이 정보과학의 폭탄을 우리 몸에서 제거할 것인가? <노 맨즈 랜드>라는 영화가 비극적으로 고발하듯이, 무력한 인간의 비참으로 끝나도록 계속 방임할 것인가?



대중매체의 감시·규율·통제적 시각을 해제하고 다중의 평화를 되찾기 위한 투쟁으로서 펠릭스 가타리와 같은 학자는 ‘탈매체 시대’로의 전환을 제안한다. 정보의 폭탄을 나르는 대중매체를 재전유, 재점령하자는 언론운동의 제안이다. <세 가지 생태학>에 언급된 대목이다.



이른바 ‘연예인 X파일’ 소동으로 떠들썩한 이 땅에서 이런 이야기가 더욱 실감있게 다가온다. 이번 일은 결코 일부 “사생활이 문란한”, “그전부터 소문이 무성했던” 일부 연예인에 국한된 일회적 사건이 아니다. 인터넷의 문제도 아니고, 연예인에 대한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는 대중의 책임도 아니다.



인체를 상품으로 포획하고자 한, 신체 관련 지식을 체계적으로 집적·관리코자 한 자본의 욕망이 빚은 비극적 결과다. 광고의 모순이다. 그럴듯하게 보이던 기자 집단이 추락하여 바로 그 신체 권력, 감시 욕망의 부정한 사슬구조에 공모해 있음을 고발한 추악한 스캔들이다.



기자 또한 신체 정보 수집과 전파의 유혹에 깊이 감염되어 있음을 폭로하는 명백한 증거다. 보드리야르가 말하는 ‘외설’, 감각적 정보의 퇴행적 문화가 한국사회에서도 극치를 이루고 있음을 생생히 증명한 테러 폭발이다. 스스로 폭탄을 짊어지고 나약한 인간 신체를 파괴하러 뛰어드는 ‘용사’의 모습을 기자사회에서도 발견하게 되는 배신감.



스스로 선언한 윤리의 수행에 실패한 기자사회는 이제 심각한 정당성의 위기에 처해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면서 어떻게 할지 집단 고민해야 한다. 현재의 저급한 언어계, 폭력적 상상계를 자발적으로 해체하고, 저널리즘 원래의 윤리·정치적 가치를 회복하며, 그래서 인간의 억압이 아닌 해방에 기여할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말인가?



주체성의 혁명을 서두르자. 장의 변환은 그 구성인자의 변신을 수반할 때 실효성을 지닌다. 개별자가 지닌 고유한 개성, 특이성의 가치를 정확히 인식·인정하는 지적·윤리적·미학적 각성이 필요하다. 사회내 개방적 흐름과의 대화, 그리고 이를 위한 부단한 자기 훈련이 필요하다.



인간 신체를 상대로 한 ‘영토 확장주의자들의 욕망’과 그로 인해 희생되는 다중의 생성적 욕망이라는 이중 현실과 진지하게 대면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자신이 행사하는 언어에 대해 예민해질 수 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갱신을 촉구하는 외부 목소리에 주목하지 않고, ‘소수의 잘못을 갖고 괜히 전체를 매도한다’며 투덜거리는 기자가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스스로 재창조할 수 없다면 기자사회는 죽음을 맞이할 뿐이다. ‘연성억압’적 매체권력에 편승한 정보 관료주의적 습성을 탈피하고 무기력함으로부터 벗어나, 사회 정의적 발언을 통해 윤리 지도력을 회복하는 것만이 탈주의 길이다.



기자라는 정체성의 재구성, 언론이라는 가치 체계의 혁신이 긴요하다. 감각 정보의 융단폭격을 위한 비행에 기회주의적으로 가담하지 않는 전문가적 결단을 요구한다. 그래서 경험의 흔적이 베어있는 사회적 이야기를 발생시키는 것, 그게 언론인의 참된 모습이다. 그런 기자가 필요하다. 소수라도.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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