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 시리즈’가 이어지고 있다. 제자의 답안지를 10여 차례 넘게 대리 작성하는 등 ‘점수 관리’를 해온 교사가 적발됐다. 대기업의 노조 간부가 취업 알선을 대가로 거액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생후 70일된 신생아를 친모와 함께 청부 납치한 뒤 어머니는 살해하고 아기는 팔아 넘긴 사건이 발생했다. 가히 ‘엽기시리즈’의 연속이다.
굳이 엽기적인 사건은 아니더라도, 충격을 줄만한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연예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연예인 X파일’ 사건과 비평대상 관련업체로부터 명품 핸드백을 수수한 ‘신강균…’사건도 그중 하나다.
두 ‘사건’의 내용과 파장은 전혀 다르다. 그렇지만 기자들이 직·간접적으로 개입돼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연예인 X파일’ 사건에 기자들은 기초정보를 제공한 사람들로 등장한다. ‘신강균…’에서는 프로그램 진행자와 담당 기자가 아예 주인공이다. 그러다보니 최근 기자들은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린다. 인터넷에 떠있는 누리꾼(네티즌)들의 댓글을 빌리면 ‘기자들은 원래 기생충 같은 존재’라는 비아냥이 대부분이다.
물론 해당 기자들은 억울할 수 있다. 특히 ‘연예인 X파일’에 관련된 기자들은 보기에 따라선 또 다른 피해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사건들은 다시 한번 우리 기자들의 윤리의식을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임에는 틀림없다. ‘신강균…’사건에서는 1백만원짜리 명품 핸드백이 등장한다. ‘연예인 X파일’ 작성에 간접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기자들도 10만원짜리 백화점 상품권 2장을 각각 받았다고 한다. 설문조사에 응한 정당한 사례라고 하지만, 외부에서는 ‘확인도 되지 않은 정보를 팔아넘긴 대가’라는 해석도 나올 법 하다. 뿐만 아니다. 작년 연말에는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동행 취재한 일부 기자들이 기업인과 통일부 공보관으로부터 ‘향응접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나 물의를 빚기도 했다.
기자들의 윤리의식 부재는 비단 금전이나 향응접대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니다. 최근 사회문제화되고 있는 이른바 ‘사건’의 중심엔 인터넷이 자리 잡고 있다. 인터넷의 속성상 한번 이슈화되면 사실여부를 떠나 그 파괴력이 엄청나다. 그래서 게이트키퍼(gatekeeper)가 없다는 점이 인터넷의 취약점으로 지적되곤 한다.
문제는 이런 인터넷 파문에도 게이트키퍼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기자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블로그에 여성 아나운서를 비하하는 글을 실었다가 법정공방에 휘말린 기자나, 인터넷상의 공방을 보도한다는 명분으로 각종 사건을 확대재생산한 일부 매체가 그런 경우다.
물론 언론 환경은 어렵다. 특히 신문 시장은 갈수록 힘들어 지고 있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 ‘앵벌이’로 내몰리는 기자도 상당수다. 이런 상황에서 기자들에게 고도의 윤리 의식만을 강요하는 것은 ‘업계 상황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이라는 현실적 반발을 부를 수도 있다.
그러나 기자는 기자다. 윤리의식이 없으면 기자도 아니다. 사정이 어떠했든 간에 윤리의식으로 비판받는 기자는 더 이상 기자일 수 없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좀 더 떳떳해 지자. 궁색한 변명은 하지 말자. ‘관행’이라고 자위하지도 말자. 최근의 사건들을 자신의 윤리의식이 어떠한지를 측정하는 계기로 삼자.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 당초에 품었던 자신만의 잣대가 훼손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자. 스스로를 반추하고 스스로의 분명한 원칙과 기준을 재정립하는 계기로 삼자. 그래서 ‘엽기 시리즈’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 독자들에게 ‘따뜻함과 순리’를 각인시키는 그런 기자가 되자고 한다면 지나친 억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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