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벽두에 한국 기자사회는 적어도 하나의 윤리적 스탠더드를 얻었다.
순수한 동창모임이고, 민감한 사안이 걸린 시점이 지났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1백만원 단위의 선물이 오간 술자리 회합은 그 관련자에게 중징계를 내려야 한다는 언론인 도덕률 말이다. 한 공영방송의 ‘고급 손가방 파문’으로 관련자들은 정직과 감봉 처분을 받았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시청자께 드리는 사장 명의 사과문 발표’라는 초유의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면 이번 ‘고급 손가방 파문’의 결과로 그동안 언론계에 횡행했던 은밀한 술자리 부적절한 선물꾸러미 고급술 명품 골프채 공짜 해외여행 등이 대속(代贖)되는가. 1백만원짜리 고급손가방 3개로 인해 그동안의 모든 암묵적 유착과 잿빛 거래가 이번에야말로 끝장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두 손 들고 기뻐할 일인가.
미디어 전반을 아우르며 강렬한 매체비평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파문 관련자들을 향해 이런 저런 목소리가 쏟아졌다. 한 상업방송의 대주주 회사와 관련된 테마를 집중적으로 문제제기 했던 고발자와 그 해당 피고발자의 ‘부적절한 만남’에 대해서는 관련자들은 유구무언일 것이다. 지탄과 비판의 대상임은 분명하다. 무슨 변명이 필요하겠는가. 하지만 앓던 이 빠진 것처럼 통쾌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방 파문’을 전리품처럼 전시하는 일부 신문의 행태는 우리에게 또 다른 슬픔으로 다가온다. 용기 있는 자기고발 정신의 진정성은 애써 모른 체한다. 약점을 지닌 자본의 끈적거리는 침윤에 고뇌하는 그 삽화를 자신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냥 비아냥거렸다. 한국 저널리즘 세계의 갈기갈기 찢겨진 분파성이 가슴 아프게 한다.
이번 가방파문이 던지는 교훈은 3가지다.
첫째, 사회 환경을 감시한다는 저널리스트의 품격을 제대로 갖추자는 것이다. 자신의 격조는 자신이 만든다. 그 누가 부여해주는 것이 아니다. 한국 언론이 유일하게 건들지 못하는 거대 자본에게 굽신거리지 않으려면 스스로가 깨끗하면 된다. 당당하면 향응도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면 거대자본의 실체가 더 잘 보이며 취재의 지평은 더 넓혀지게 된다.
둘째, 한국 거대 자본과 언론과의 긴장성이다. 자본은 분명 우리 사회의 성장엔진이다. 좁은 한반도에서 거대시장으로 진출하는 우리의 ‘탱크’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자본이 무소불위가 되서는 안 된다. 소비자의 엄중한 심판과 언론의 날카로운 눈빛이 있어야 한다.
1991년 사주와의 갈등으로 편집국장직을 물러나게 된 유명 신문 소속 한 언론인은 일갈했다. “1990년대가 열리면서 우리는 정치권력보다 더 원천적이고 영구적인 도전세력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는 표표히 그 회사를 떠났다. 그의 예언적 숙제를 21세기에도 우리는 풀지 못하고 있다. 우리 시대의 ‘동력원’ 자본이 무한계의 자기증식 논리에만 사로잡힌 괴물이 아니라 휴머니즘적 품위를 갖춘 자본이 될 수 있게끔 지원하는 것은 언론의 살아있는 눈빛밖에 없다.
셋째, 차고 넘치는 매체의 풍요시대. 양과 질이 제대로 확보되지 못한 채 쏟아지는 미디어 생산품 홍수사태. 미디어 상호간에 비판하고 견제 감시하는 장치는 꼭 필요하다. ‘고급 손가방 파문’은 진정한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더 절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성역은 하나씩 허물어지고 있다. 한국 사회의 도도한 투명성 명제는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언론개혁을 의제수준이 아니라 실천수준으로 견인하는 프로그램의 열정은 계속되어야 한다.
한 해의 첫 달, 겨울 파문은 여러 빛깔의 파도를 일으켰다. 파도가 철썩거리는 흰 포말 속에서 한 마리의 파랑새가 날아오르고 있음을 우리는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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