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노미에 빠진 미디어 정책




  김영욱 책임연구위원  
 
  ▲ 김영욱 책임연구위원  
 
미디어 영역의 행위 주체들이 아노미에 빠진 것 같다. 뒤르깽에 따르면 아노미(a-nomie)는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규범(norm)들이 유효성을 잃은 상황을 말한다. 사회공동체는 구성원의 욕구 조정을 통해 안정적 욕구 충족을 보장한다. 규범은 개인의 욕구를 일정 수준에서 제한한다. 그러나 경제 위기나 호황 등으로 그 한계가 모호해지면, 사회 전반에서 일탈행위가 늘어난다. 이것이 뒤르깽이 설명하는 아노미적 자살의 사회적 원인이다.



규범 체제는 기존의 권력구조를 반영하며, 인간의 자의적이고 자유로운 행위를 억압한다. 그러나 규범은 동시에 행위에 일정한 규칙성을 부여해, 우리가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상호 행위를 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규범 체제는 기대 체제이기도 하다. 근래에 기대와 예상을 뒤집는 굵직한 사건들이 자주 벌어진다. 대통령 탄핵이 그랬고, 신행정수도에 대한 위헌 판결도 그랬다. 교육부 장관 인사도 예상 밖이었고, 그에 대한 문책도 일반적인 기대에 빗나간 것이었다.



미디어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저널리즘과 거리가 먼 내용으로 채워진 무료신문이 출근 길 독자들을 지배하더니, 급기야는 한 스포츠 신문이 부도를 냈다. 신문법이 통과된 과정도 기묘하거니와 그 내용도 보통 상상력으로는 예측하기 힘든 것이었다. 방송 재허가 추천 문제로 SBS가 주목을 받더니 정작 방송 중단 처분을 받은 것은 iTV다. 내가 소속된 언론재단이 이사장 선임 문제로 갑자기 언론에 주목을 받은 것도 새로운 현상이다.



규범은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정체되고 죽은 사회가 된다. 그러나 과정과 방식이 문제다. 지속적으로 사회 갈등이 표출되고, 그래서 기존의 규범이 정당성을 상실하고, 사회적 논의를 통해 갈등의 조정되고, 그 결과 새로운 규범이 만들어지는 것이 정상적 과정이다. 이를 통해 사회는 유연하고 원활하게 변화한다.



아노미 상황에서 갈등은 사회적 논의가 아니라 벌거벗은 힘에 의해 봉합된다. 봉합의 결과는 예측 가능한 범위를 넘어 우연의 영역에 위치한다. 신문법과 같이 사회적 논의 구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이 누구도 원하지 않는, 즉 여당과 야당, 개혁을 주장한 쪽과 대상으로 지목된 쪽 모두가 만족하지 못하는 내용으로 통과된 것이 그 예다.



당장 아노미를 벗어날 수 있는 특효 처방은 없을 것이다. 신선하진 않지만 이미 증명된 처방을 택할 수밖에 없다. 행위 주체들이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서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그것이다. 예컨대 언노조는 미디어 노동의 물질적 정신적 가치를 지키는 역할로 돌아가야 한다. 소속 언론사의 이해관계의 각축장으로 전락해서는 곤란하다. 기자협회는 기자의 위상과 권위를 높이는 전문직 집단의 역할을 해야 한다. 집행부와 지회 간부들의 친목단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신문은 독자가 자신의 주인이 되는데 필요한 정보 제공에 주력해야 한다. 회사의 이익과 정치적 입장을 위해 저널리즘을 오염시켜서는 안 된다. 정부와 국회는 합리적 논의가 가능한 미디어 구조를 만드는데 치중해야 한다. 내편과 네편을 구분하는 틀로 접근하는 미디어 정책은 정당성을 얻기 힘들다. 언론학자는 학문적 진실을 지켜야 한다. 좋은 일이라고 해서 증명되지 않은 주장에 학문의 이름을 빌려주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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