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마감하는 12월의 모임을 송년회 또는 망년회라 칭한다. 그러나 같은 연말 모임이라도 송년회로 하느냐 망년회로 하느냐에 따라 참석자들의 마음가짐은 달라지는 것 같다. 송년회에는 묵은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는다는 긍정적ㆍ낙관적 인생관이 엿보이는 반면 망년회에는 부정적ㆍ염세적 가치관이 강하게 드러난다.
한국 기자들에게 2004년은 정말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해, 기억의 창고에서 송두리째 뽑아버리고 싶은 해일 것이다. 2004년은 실추(失墜)의 해였다. 직업적 자부심, 사명감, 긍지, 그리고 종국에는 일자리와 월급봉투까지. 그래서 한국기자들은 송년(送年)이 아닌 망년(忘年)을 하고 싶어한다. 그저 빨리 2004년을 잊고, 기억에서 말끔히 지워버리고 싶을 뿐이다.
연초부터 시작된 매체간 갈등을 보면서 우리들은 그것이 ‘당초 의도한’ 건전한 비판과 견제의 기능을 수행하기에는 상호 불신의 골이 너무나 깊다고 우려한 바 있다. 실제로 비판의 대상이 된 매체는 자신을 비판한 언론사에 대해 “불순한 의도가 끼어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고, 거꾸로 자신을 비판한 매체의 ‘약점’을 찾아내 비판했다. 결과는 어떤가. 승자도 패자도 없는 기자직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도 추락으로 이어졌다. 국민들은 더 이상 기자들을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비판자가 아닌 권력 또는 소속사의 이해에 따라 춤추는 집단쯤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이는 ‘기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하는 대목이다.
무료지의 범람도 되짚어 보고 싶은 대목이다. 특히 무료지가 좀 된다고 해서 일반 신문사에서 뒤늦게 각종 무료지 시장에 뛰어든 것은 내내 우리를 힘들게 하는 원죄로 작용하고 있다. 기자가 쓴 기사를 무료로 나눠주는 대신 광고 수입을 더 올리면 돈벌이가 될 것이라는 일부 경영진의 얄팍하고 근시안적 사고에 기자직을 천직으로 알고, 자신이 쓰는 기사로 존재의 이유를 삼는 일반 기자들은 낙담했다. 그들은 기자의 피와 눈물과 땀의 결정체인 기사를 무료로 줘도 괜찮은 것으로 취급했다. 무료신문은 이렇게 기자들의 자존심을 실추시킨 측면도 있었던 것이다.
2004년 12월 기자사회에는 명예퇴직의 칼바람이 몰아쳤다. 경제악화가 가져온 광고물량 축소는 스포츠지와 종합일간지를 초토화시키고 급기야는 방송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가장 잘 나가는 방송도 광고 판매액이 예년의 60%밖에 안 된다고 울상이다. 회사를 떠난 기자들은 실추된 기자직을 바라보는 사회의 냉랭한 시각에 몸서리친다. 그들의 뒤늦은 성찰은 부메랑되어, 남아있는 기자들의 가슴을 후벼낸다.
2004년의 피날레는 주미대사로 내정된 유력 언론사 사주가 장식했다. 그의 내정 사실을 두고 언론관련 시민단체들은 ‘경악’ ‘정권의 정체성’ 등등의 격한 용어를 동원해가며 강력한 반대의사를 표하고 있다.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번 인사를 보는 우리의 시각과 호흡은 깊다. 그 이유는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소속돼 있는 신문의 일부 직원들조차 “신문이 개인적 야망의 도구로 이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점만은 전달해주고 싶다. 이는 앞으로 그가 보여줘야 할 새로운 ‘능력과 자세’가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공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약속하는 출발점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2005년 기자들은 대동 단결해야 한다.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라는, 기자를 기자이게 하는 대의명분의 깃발 아래 모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2005년 역시 한국기자에게 희망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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