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C 최고 언론인 장지연·송건호] 40여년간 언론민주화 외길 걸어
75년 후배기자 무더기 해직에 항의 편집국장 사직, 민언협 창설·한겨레 창간 구심점 언론변혁 앞장서
청암(청암) 송건호 선생은 70년대 이후 한국 언론의 저항정신과 기자정신을 상징한다.
청암은 40여 년 동안 언론인의 외길을 걸으며 군사독재정권에 맞선 언론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서 왔다. 1927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난 청암은 53년 대한통신에 언론계 첫발을 내딛어 조선일보, 한국일보, 경향신문, 동아일보 등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청암은 외신부 기자와 논설위원만을 지내 외근의 취재 기자 경력을 갖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출중한 인품과 글솜씨로 경향신문과 동아일보의 편집국장을 맡았다.
청암은 동아일보 편집국장에 재직하면서 당시로서는 금기시되던 학생 시위 보도를 감행해 74년 10월 23일 중앙정보부에 연행돼 조사를 받게 되었고, 기자들이 이에 분개해 국장의 귀사를 기다리면서 사내 농성을 벌였으며, 이러한 격앙된 분위기가 바로 다음날 '자유언론실천선언'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독재 정권의 언론 탄압에 맨 앞에서 저항해 온 청암이기에 다음해인 75년 동아일보 기자들이 '자유언론수호투쟁'을 벌어다 150여 명이 해고되자 항의의 사표를 던지고 편집국장직을 물러나 험난한 민주화 투쟁의 길로 뛰어들었다.
이후 후배 해직기자와 함께 언론자유 수호 운동을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84년 해직 언론인들과 함께 '민주언론운동협의회'(민언협·민언련 전신)를 결성, 초대 의장으로 언론민주화 운동에 주력했다. 75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해직기자로 이루어진 '동아자유수호투쟁위원회'와 '조선자유수호투쟁위원회', '80년 해직 언론인'들이 주축을 이룬 민언협은 91년 11월 '언론학교'를 개설, 국민들을 대상으로 언론바로보기 교육에 나서기 시작했다. 청암은 민언협 창립 이듬해 6월 기관지 '말'을 창간해 '보도지침' 사건을 폭로하는 등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한국 언론의 현실을 전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87년 6월 항쟁 이후 각계 각층의 인사들이 참여한 한겨레신문의 창간 운동에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는 김수환 추기경, 소설가 황순원씨 등 사회 각계원로 24인과 새 신문 창간의 시대적 당위성을 역설하고 국민적 지원을 당부하는 메시지를 발표하면서 국민적 호응은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졌다. 2만 7052명의 창간 주주들이 모은 창립 자본금 50억 원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12년만에 언론 현장으로 돌아와 한겨레신문사 초대 사장을 맡은 그는 88년 5월15일양평동 사옥 중고 윤전기에서 갓 나온 창간호를 들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민주·통일을 지향하는 신문' '촌지 없는 신문' 등을 강조한 한겨레신문 사장 송건호는 보수 일변도의 한국 언론에 일대 혁신을 불러 일으켰다.
지난 11월 정부도 편집권 독립의 전통을 수립하고 노조와 공존하는 새 언론문화의 틀을 정립한 업적을 기려 금관문화훈장을 수여했다.
청암은 해직 시절 이후 '단절시대의 가교', '한국민족주의의 탐구', '한국 현대사론', '분단과 민족', '민족통일을 위하여' 등 저술을 남겨 한국 지성의 사표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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