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들어 소송이 크게 늘고 있다. 너무 늘어 홍수가 나고 정도가 지나쳐 남발이라고 해야 맞을 정도다. 한 나라의 큰 어른인 정부는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비판언론사(?)를 상대로 잊을 만 하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건다.
한 방송사는 자신의 약점을 캐내는 신문사를 상대로 억(億)소리 나는 소송 카드를 내밀었다. 신문사는 신문사끼리, 방송사는 방송사끼리 서로 물고 물리는 송사를 벌인다. 정치권 못지않게 언론사들도 진흙탕싸움에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있다.
정부와 언론사가 이 정도니 다른 집단은 말을 해 무엇하랴. “명예훼손이다” “사실과 다르다” 저마다 외치며 언론사를 상대로 소장을 접수시키고 있다. 한마디로 소송만능의 시대인 것이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 개인을 상대로 한 소송도 크게 늘고 있다. 그래서 언론사뿐만 아니라 기자들도 소송 건으로 법원에 불려 다니는 일이 늘고 있다. 어느 방송사의 한 기자는 혼자 서 너 건의 소송에 얽혀있을 정도다. 최근 소송의 배상요구액이 큰 점을 감안하면 소송에 지게 되는 기자는 파산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소송이란 수단을 통해 해결할 밖에 없는 사람들의 심정도 어느 정도 이해는 한다. 하지만 도를 지나친 소송의 남발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 사회발전을 가져오는 건전한 비판기능을 위축시킨다. 특히 공식중재기관인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사안조차도 굳이 소송으로 몰고 가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비판언론에 재갈물리기로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현장을 뛰는 일선기자들의 취재의욕을 꺾어 국민의 알권리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도 있다.
물론 기자는 사실에 입각하여 기사를 써야 한다. 이해당사자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안은 사실관계 확인을 더욱 면밀하게 해야 된다. 사실 확인은 기자 본연의 의무다. 이런 의무를 간과한 기자는 비난받고 소송을 당해 마땅하다.
하지만 요즘 소송의 경향은 ‘전가의 보도’ 마냥 지나치게 마구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송만이 최고해결책이 아니다. 소송으로 일어난 자는 소송으로 망할 수 있다. 조선시대엔 소송을 남발하는 사람은 호송죄(好訟罪)로 처벌했다고 한다. 법보다 양식이 중요한 규범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최근 열린우리당이 언론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던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려다 철회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그러면 소송남발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먼저 소송남발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특별법의 제정을 들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1991년부터 도입해 시행하는 ‘특별기각신청제’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이 제도는 고위공직자나 대기업 등이 명예훼손소송에서 이기려면 피고가 허위의 사실이라는 것을 인식했거나 원고가 언론이 악의적으로 비방보도를 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는 점에서 소송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특별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윤리와 양식이다. 소송으로 서로 얼굴을 붉히는 대신 이성적인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개인이나 단체의 ‘열린 마음’이다. 국민의 알권리와 언론자유는 소송으로 침해당할 수 없는 민주주주의 최우선가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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