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국회에 제출한 이른바 ‘언론개혁법안’을 둘러싸고 논란이 한창이다. 이중 ‘신문 등의 기능 보장 및 독자의 권익 보호 등에 관한 법률(신문법)’에 대한 논란이 특히 심하다. 핵심은 물론 ‘시장점유율 제한’이다. 이해나 사활이 걸린 만큼 이 조항에 대한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신문법안 중 또 다른 쟁점은 ‘편집위원회 설치와 편집규약의 제정’을 의무화한 조항이다. 법안은 사측과 근로자 대표로 편집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회가 편집규약을 제정토록 명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쪽에서는 “편집권의 독립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오히려 편집권의 침해”라고 맞서고 있다.
여기서 법안에 대해 시시비비를 따지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편집권 조항’ 신설을 계기로 과연 편집권이 진정으로 독립돼 있는 지를 한번 짚어 봤으면 한다. 과연 편집권이 사주나 발행인, 또는 제3자에 의해 부당하게 침탈당하고 있지 않은 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다.
예를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얼마 전 한 신문사의 만평이 지면에서 누락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시(社是)와 편집방침에 어긋나기 때문”이라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지만, 신문업계 종사자들은 “편집권의 독립을 심하게 훼손시키는 행위”라는데 이론이 없다.
문제가 되고 있는 한 지방지는 또 어떤가. “광고 수주를 위해 기사 쓰기에 게을리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는 게 기자들의 고백이고 보면, 편집권의 독립을 운위할 상황도 아니었다는 점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일이 비단 두 신문사에서뿐만 아니라, 우리가 몸담고 있는 언론사에서 너무나 자주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명백한 사실을 근거로 특정 정치집단이나 특정 기업, 특정 단체에 대해 결과적으로 흠집이 나는 기사를 작성했다고 치자.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기사가 나가지 않는다. 기사가 나가더라도 도저히 취재 의도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윤색돼 버린다. 위에다 항의하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사시에 맞지 않는 것 아니야?” 또는 “회사 사정을 생각해야지”.
이 사회를 살고 있는 기자라면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해봤을 것으로 생각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언론사의 경영환경이 악화되면서 이제 이런 문제에 기자 스스로가 점점 무감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자협회보가 회원사 1백30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편집국장 및 보도국장 임명절차에 대한 결과가 나왔다. 전체의 77.7%인 1백1개사에서 사주나 발행인이 편집·보도국장을 일방적으로 임명하는 ‘임명제’를 취하고 있다는 게 골자다. 물론 ‘직선제’를 통해 편집· 보도국장을 선출하거나 ‘추천제’및 ‘임명동의제’를 실시한다고 해서 확실한 편집권 독립을 구현할 수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실제 직선제나 추천제 등도 상당한 시행착오를 겪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10개사 중 8개사가‘임명제’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은 편집권 독립을 위한 노력이 얼마나 등한시되고 있다는 걸 반증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신문법안 중 ‘편집권 조항’에 대한 반론중 하나는 ‘편집권은 사주나 발행인의 사시나 기자의 편집권 등으로 동시에 구현되기 때문에 법적으로 강제할 수 없다’것이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그러나 외부에서 보기에 편집권의 독립이 얼마나 침탈당하고 훼손됐으면, 이런 강제조항이 나왔을까에 대해 우리 스스로 자문해봐야 한다. 우리 스스로가 부끄러운 줄 알고, 가장 원론적 문제인 편집권 독립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어 봐야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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