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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욱 한국언론재단 책임연구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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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푸드’는 넘쳐나는데 제대로 된 음식은 구하기 힘든 사회는 어떻게 될까? 구성원들이 활력을 잃어버린 그런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하기 힘들 것이다. 의식(意識)산업이라고 불리는 미디어, 특히 그 중 핵심적인 영역인 저널리즘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저널리즘 ‘라이트’의 급격한 확산이 그것이다.
서울에 6개의 무료신문이 있다. 신문사가 주장하는 발행부수를 합치면, 3백만부가 넘는다. 무료신문이 지배하는 출근시간 지하철에서 일반 종합일간지를 읽는 모습은 이제 예외가 되었다. 무료신문은 일반 신문의 축소판이나 다이제스트가 아니다. 신문이 전통적으로 비중있게 다루는 주제인 정치, 경제, 사회, 국제가 차지하는 비율이 이들에게서는 아주 낮다. 지난 해 12월 1주간 발행된 ‘메트로’ 지면을 분석한 결과(최경진)를 집계해 보면, 이 주제들이 차지한 비율은 광고를 제외한 전체 지면의 40% 미만이었다. 2001년 5월 ‘조선’과 ‘중앙’을 분석한 결과(한국언론재단)에서 이 비율은 70% 정도였다.
양에서만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다. 정치, 경제 및 사회 영역의 뉴스 선정에서도 무료신문은 독자의 주목을 끌 수 있는 특이한 사건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은 외양과 공짜라는 점에서만 다른 것이 아니라, 본질에서 전혀 다른 신문이다. 결함이 있는 식생활을 간편하게 대체해주는 비타민제가 아닌 것이다.
대안 미디어로 주목 받는 인터넷에서도 포털 사이트가 득세하고 있다. 2003년 3월 ‘다음미디어’가 본격적 뉴스서비스를 시작한 후, ‘다음’과 ‘네이버’의 뉴스서비스가 방문자 수에서 ‘조선닷컴’이나 ‘조인스닷컴’을 앞서기 시작했고, 차이는 더 벌어지고 있다. 포털 사이트가 노리는 것은 이른바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로, 이들에게 최대 뉴스가치는 주목을 끄는 것이다. 내가 이 글을 쓰면서(18일 오후) 들어가 본 ‘다음 뉴스’의 ‘가장 많이 본 기사’ 목록 최상단에 올라 온 기사가 “고교생이 후배 폭행해 숨지게 해”였다. 목록에 포함된 다른 기사들 중에서도 ‘진지한’ 주제는 드물었다.
무료신문이나 포털 사이트가 기존 언론의 광고 시장을 잠식하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진지한 저널리즘이 설 땅이 좁아진다는 점이다. 진지한 저널리즘의 대상은 복합적인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진지한 저널리즘이 소화하기 힘든 정보 덩어리를 뭉쳐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 가능하면 쉽게 그리고 흥미있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안에 대한 수용자의 사전 지식과 관심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패스트푸드’에 적응된 어린이가 제대로 된 음식을 외면하듯, 정보의 형태를 띤 오락에 익숙한 수용자에게 복합적인 사안이 흥미와 관심을 유발시키기 힘들다. 오락은 오락을 부르며, 오락에서 순수 오락물을 당해낼 장르는 없다. 인포테인먼트가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진지한 저널리즘을 보다 충실하게 실현하는 것이 저널리즘 ‘라이트’에 대한 대응이라고 본다. 진지한 저널리즘은 사람들의 주목(attention)이 제한된 자원이면서, 아주 귀중한 자원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정보, 자신이 사는 세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정보’가 무엇인가를 진지하고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그러한 저널리즘은 지금 국감 보도에서와 같이 정쟁을 여과없이 반영하고, 그래서 다시 정쟁을 부추기는 뉴스 가치 판단과는 거리가 멀다. 최근 MBC와 SBS의 경우처럼, 상호 비방을 위해 혹은 그러한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는 내용을 과감하게 정규 뉴스로 내 보내는 식의 태도로는 저널리즘 ‘라이트’의 공세를 막기는 더더욱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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