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위원회의 지상파 재허가 추천 심사에 대한 정치권의 압력과 간섭이 도를 넘고 있다. 제대로 된 정치권이라면 `거대 권력’으로 자리잡은 방송사에 대해 방송위가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심사하고 과오를 바로 잡도록 하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런데 정치권은 되레 방송위를 압박하며 직접 자기네들이 심사하겠다는 투로 연일 감 내놓아라 배 내놓아라 하고 있다. 명백한 월권 행위라고 보여진다.
열린우리당은 심사가 진행 중인 시기에 특정 방송사를 거론하며 강도 높은 심사를 촉구해 문제를 키웠다. 대단히 부적절했으며 야당에게 빌미를 제공했다. 한나라당은 문제가 드러난 방송사를 두둔하며 심사를 정치문제로 변질시키려 애쓰고 있다. 그간 방송위의 심사가 유명무실했으니 이번 실질심사가 퍽 당황스럽기도 하겠으나 방송위와 방송사를 감독하는 국회의 자세가 아니라는 것은 당사자들도 양심에 비춰볼 때 잘 알 것이다.
이 같은 행위가 `장외전’에 그쳤다면 그나마 봐 줄만 하겠다. 그런데 설상가상이다. 한나라당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재심대상인 `2차 의견청취 대상사업자’가 발표되자 방송위에 쳐들어갔다. 부끄럽게도 그들의 다수는 바로 어제까지 기자였고 아나운서였던 `알만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민영방송장악음모 진상조사단’이란 거창한 이름을 내걸고 심사작업이 진행중인 방송위에 가서 심사위원장 등을 상대로 경위를 추궁했다.
방송사의 문제를 바로 잡아야할 문광위원들이 SBS라는 지역민방의 재허가 문제를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로 접근한 것이다. 심사과정에서 SBS에 대한 문제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면 이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겠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의 행위는 방송위의 정치적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결국 전국언론노조 방송위지부는 ‘정치권은 재허가 심사를 정략적으로 재단하지 말라’는 성명서를 내며 반발했다.
일부 의원들은 10월초 열리는 국정감사를 앞두고 심사위원 채점표까지 복사해 달라는 등 현재 진행 중인 심사자료를 무더기로 요구해 몰상식을 드러냈다. 10월말은 되어야 최종결과가 나온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방송위가 제대로 일하는지 따져보겠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이해를 대변해온 방송사를 보호하기 위해 심사를 무력화시키겠다는 저의다.
오늘날 방송은 분명 거대권력이다. 국민의 재산인 전파를 임대받아 운영되는 공익사업인데다 힘이 거셀수록 이끼가 끼기 마련이라는 점에서 일정 주기마다 적절한 통제와 검증은 당연하다. 그런데 방송위는 이 같은 방송사들을 제대로 심사한 적이 없었다. 원죄가 크다. 새로 출범한 3기 방송위원회는 이 같은 호된 비판을 받아들여 올해부터 실질심사를 하기로 선언했다.
반면 상당수 방송사들은 언론기관으로서의 지위와 힘을 과신한 듯 이 같은 방침을 비웃으며 3년 전 약속한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고 서류조차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 정치권도 선거를 통해 사람은 바뀌었지만 의식은 3년 전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이 같은 구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중 특히 문광위원들은 정신차려야 한다. 국민들이 부여한 책무는 입맛에 맞는 방송사들의 문제점을 눈감고 편을 들라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점을 바로잡아 건전하게 육성되도록 하라는 것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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