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자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너의 이름은 자이툰 부대. 한국기자는 네가 국가의 부름을 받고 모래폭풍이 휘몰아치는 이라크 사막으로 떠나던 날 너의 뒷모습조차 배웅하지 못했다. 너를 환송하지 못한 데는 그나마 핑계라도 있었다. 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조용히 서울공항에서 떠나가 주길 원한 측의 바람이 워낙 간절했으니. 공항에는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국방장관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몇 개월. 한국의 신문과 방송과 인터넷에선 자이툰 부대와 관련한 그 어떤 소식도 비치지 않고 있다. 과연 한국 정부가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번째로 많은 3천6백명의 군대를 이라크로 파병하기나 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근 “한국군의 이라크 내 활동상은 한국에서는 전혀 보도되지 않고 있다. 한국 국방부는 안전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제는 파병과 관련한 정치적 논란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는 요지의 기사를 실었다. 이라크에 파병된 자이툰 부대 소식이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 까닭은 파병부대를 따라간 종군기자가 없기 때문이다. 자국의 군대 3천6백여명이 전장(戰場)으로 떠났는데 기자들이 단 한 사람도 이들을 따라가지 않았다(?) 외국 언론은 이 같은 희한한 상황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며칠 전 아랍계 방송사 기자가 이라크에서 취재도중 사망했다. 도시 게릴라전으로 치닫고 있는 현재의 이라크 상황은 이라크전 이후 전개된 그 어떤 국면보다 위험하다고 한다. 누구도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기자가 자이툰 부대를 나몰라라 내팽개치는 표면적인 이유는 두 가지라고 한다. 어느 기자도 이라크 종군기자를 자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차라리 초기 이라크전쟁 당시처럼 진격하는 미군 뒤를 따라 들어가는 게 전선(戰線)이 없는 지금의 도시 게릴라전보다 오히려 더 안전하다는 말을 한다. 종군 취재를 하다 죽기 싫다는 얘기다.
언론사측도 자사 기자의 이라크 파견을 머뭇거리고 있다. 자원자가 없으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런데 광고매출이 급감해 경영 사정이 나빠진 언론사들도 내심 경비가 많이 드는 ‘이라크 특파’를 원치 않는다는 얘기도 들린다.
죽고 싶지 않다는 기자나 비싼 돈 들여 위험한데 보내고 싶지 않다는 언론사를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만은 없다. 기자와 언론사의 이 같은 묵계(默契)에는 자이툰 부대에 관련한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는 것을 꺼리는 권력의 희망도 보이지 않게 틈입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이라크에 종군기자가 파견되지 않은 것으로 설명할 수 있나.
한국기자는 이미 기자이기를 포기했다. 자이툰 부대를 종군취재하지 않은 것은 기자의 직업윤리를 땅바닥에 내던졌다는 것을 뜻한다. 위험이 예상된다고 그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기자의 책임과 의무를 저버리는 건 이미 기자가 아니다.
사실 6ㆍ25전쟁 당시 외국 종군기자들은 수십명 취재를 하다 숨져갔지만 한국기자는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 후방에 앉아 안전하게 취재를 했기 때문이다. 월남전에서도 양상은 비슷했다. 이라크전에서도 자기나라 군대를 외국에 보내놓고 한국 언론과 기자는 나 몰라라 한다. 한국 언론사의 치욕으로 기록 될 일이다. 어쩌면 한국기자는 이미 펜을 놓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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