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옷로비 은폐· 조작 의혹 증거확보

녹음테이프-휴가 못가고 20여 차례 당사자 설득, 최종보고사-심재륜 변호사 도움으로 어렵게 입수

이수형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었다.6월2일 옷로비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승복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검사 인사권을 쥐고 있는 현직 법무부 장관 부인이 고소한 사건을 검찰이 수사하는 것 자체가 정당성이 없었다.신동아그룹 최순영회장을 수사한 검사가 옆방으로 건너와 최회장 부인도 조사하는 것은 절차적 정당성을 근본적으로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절차가 공정하지 못한 수사의 결과가 좋을리 없었다.'실패한 로비'라는 수사결과 발표는 곧 '실패한 수사'로 귀결될 수 밖에 없었다. 독자의 망각은 때로 기자에게는 편리한 핑계일 수도 있다.'그래도 남는 의문점'을 몇줄 쓰고 '국민적 의혹이 집중된 사건'을 잊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옷로비 사건은 달랐다.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수사발표후 2,3일이 지났을 때 평소 친하게 지내던 검사를 찾아갔다.그 검사가 말했다."어제 강인덕장관과 배정숙씨의 가족중 한사람을 만났는데 검찰 수사결과에 불만이 대단히 많던데.짜맞추기 수사로 자기네만 기소됐다면서 검찰 욕을 막 하더라니까."



'혁명'은 '불만'으로부터 시작되는 법.배씨 가족을 수소문해 그의 작은 아들이 서울 여의도 외국계 금융기관에서 근무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마침 법조팀에는 미국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는 김승련기자가 있었다.김기자는 수습을 마치고 사건기자 경험이 없이 국제부에서 오래 근무하다 3월 사회부 법조팀으로 왔다.김기자에게 배씨 아들을 한번 만나보라고 했다.



7월 3일 김기자는 처음으로 배씨 아들과 딸을 만났다.며칠 뒤 배씨의 사위 금문호씨도 만났다.금씨는 노태우대통령의 손아랫동서인 금진호씨의 막내 동생.김기자 부친도 6공 각료를 지내 잘 통하는 것 같았다. 김기자는 이때부터 8월중순까지 20여차례 배씨의 아들과 딸,사위를 집과 사무실로 번갈아 찾아가며 만났다.심야에 만나 새벽까지 얘기를 나누기도 했고 이 때문에 김기자는 여름휴가도 못갔다.만난 결과는 '숨소리'까지 정리해 보고했다.



우리는 김기자 보고를 통해 이 사건이 단순한 '옷로비' 사건이 아니라 청와대와 검찰 등 권려핵심의 은폐축소 의혹이 짙은 권력형 비리사건임을 알게 됐다.배씨측이 '사직동팀 조사보고서'와 '녹음테이프' 등 물증을 가지고있는사실도 알아냈다.



배씨측은 이를 줄듯줄듯 하면서 끝내 주기를 거부했다.파문이 걱정된다는 것이었다.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는 상태로 국회청문회를 맞고 아무 것도 쓸 수 없었다.



10월 들어 드디어 특별검사 수사가 시작됐다.특검은 출범회견에서 "국민들의 제보를 기다린다"고 했다.



우리는 10월 말 자료를 특검팀에 건네줬다.며칠 후 특검팀의 요청에 따라 압수수색을 할 근거를 마련해주기 위해 진술서도 작성해주었다. 압수수색은 성공적이었다.문제의 사직동 문건도 확보했고 녹음테이프도 찾았다.



압수수색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기사는 쓰지 않기로 했다.이 사건에 관한 한 '기사' 자체보다는 '진실발견'이 더 큰 목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사도중 녹음테이프에 나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김정길 정무수석의 부인 이은혜씨라고 정확히 보도한 것이 논란이 됐다.다른 언론사 기자들은 특검팀이 동아일보에만 흘려준 것이라고 특검팀에 항의를 한 것 같았다.우리는 특검팀에 쏠리는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그 과정을 기자실에 상세히 공개했다.



11월26일 우리는 다른 경로를 통해 사직동팀 최종보고서를 입수해 보도했다. 보고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8월말. 당시에는 무슨 문건인지 몰랐다. 배정숙 씨가 최초보고서를 폭로한 22일에서야 제3의 문건이란 걸 알았다. '즉흥적'인 박시언가 평소 존경한다는 심재륜 변호사(전 고검장)의 힘을 빌려 뺏다시피 해 기사를 쓰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23일 최종보고서를 받았다. 그후 25일 박 씨와 신동아측 사람들이 신문사에 찾아와 기사를 쓰지 말아 달라고 했으며 25일 밤 12시까지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최영훈 차장과 함게 박 씨를 설득하느라 상당히 애를 먹었다.



검찰 수사가 진행중이던 5월말에는 김태정 당시 법무부장관이 연정희 씨를 통해 고소하게 한 후 이형자 씨에게 "이 선에서 끝내자"고 협상을 제의한 사실도 녹취해 놓았으나 이 부분은 기사화하지 않았다. 결국 26일 보도직후 이 사건의 한가운데 있던 청와대 법률비서관은 사퇴했고 사건의 큰 흐름은 다 드러났다.



26일 보도 후 한 변호사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어떻게 정보가 동아일보로만 쏠리느냐"고.그냥 웃기만 했지만 굳이 대답을 하자면 이렇다."정보는 쏠리는 것이 아니라 찾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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