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새내기를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들만의 패기와 진지함, 열정도 그렇거니와 천하를 삼킬만한 호연지기와 참신한 문제 의식이 정말 부럽다. 그러나 이들을 바라보는 심정이 마냥 흐뭇한 것은 결코 아니다. 절로 떠오르는 새내기 시절의 추억은 현실과 오버랩되면서 이내 씁쓸함으로 연결된다. ‘올드 미디어’로 전락,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신문기자들에게는 특히 그렇다.
사실 신문기자라는 직업을 택할 때부터 부(富)는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를 쓰고 기자가 되고자 했던 것은 이른바 ‘올바른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하고자 하는 기백과 명분때문이었다.
다분히 자기 만족적인 이 알량한 자존심이 그동안 기자들을 버티게 하는 동력이었고, 힘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제는 버티기조차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들려오는 것이라곤 온통 사기 떨어뜨리는 소리뿐이다. 구조조정과 임금 삭감은 일상화되고 있다. 어느 신문은 임금의 50% 삭감을 추진한다고 한다. 또 다른 신문은 벌써 40명의 인력을 줄일 방침이라고 한다. 독립신문의 표상으로 여겨졌던 중형 신문사나, 그래도 형편이 낫다는 대형 신문사도 앞다퉈 기자들을 졸라매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환경은 기자들을 물질적, 정신적인 한계선상으로 내몰고 있다. 당장은 생계가 문제다. 정신적인 황폐화는 더욱 심하다. 경영 환경이 어렵다는 명분으로 몰아치는 경영진의 요구에 속수무책이 되면서 어느 때부터인가 광고주의, 취재원의, 관련 단체의 눈치를 보게 됐다. 듣고도 못 들은 척하고, 보고도 못 본 척 해야 한다. 애초에 품었던 기백이나 명분은 집구석에 처박아 둔 채, ‘상업성’과 ‘주의주장’만 횡행하는 지면을 꾸려야 하는 전쟁터에 나서야 한다.
물론 누구를 탓하자는 건 아니다. 입만 열면 경영환경을 들먹이는 경영진에게, 신문사의 어려움을 활용해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시키려는 광고주에게, 신문기자를 ‘구시대의 전령’쯤으로 취급하는 정부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울 생각은 추호도 없다. 잘못은 우리에게 있다. 미디어의 발달을 내다보지 못한 채 ‘올드 미디어’를 선택한 우리들의 잘못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우리는 새내기시절 가졌던 알량한 자존심마저 내팽개칠 수는 없다. 아무리 시대가 변한다고 해도 신문의 역할과 기능은 분명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바란다. 기자들이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도록 기자를 포함한 관련 주체들이 좀 진지하게 노력하기를 말이다.
사주(社主)는 기자들만 옥죄지 말고 경영이 그토록 어렵다면 사재라도 털어라. 경영진은 상업적 논리를 들이대면서 기자를 ‘벼랑’으로 몰고 가지 말아야 한다. 때로는 담합하고 때로는 무한경쟁에 나서서 공정경쟁 질서를 흐트러뜨린 과오를 반성하고 땅에 떨어진 신문의 신뢰를 되찾는데 앞장서 주길 당부한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신문을 비롯한 언론개혁을 적극 지지한다. 그러나 언론개혁이 무조건적인 ‘종이신문 죽이기’여서는 곤란하다. 정말 독립된 편집권을 갖고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 줘야 한다.
“시대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데 아직도 신문기자냐”고, “더 늦기 전에 살 길 찾으라”는 주변의 충고(?)는 고맙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살길이라곤 새내기 때 품었던 그 알량한 자존심을 되찾는 일밖에 없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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