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주장] 언론이 먼저 중심 잡아야 할 때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12일 국회를 통과하면서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이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대화와 타협 문화가 실종된 정치권은 낯뜨거운 인신공격성 발언으로 얼룩지고, 책임 소재를 둘러싸고 같은 당에서 지도부 사퇴 요구가 거세지는 등 ‘고삐풀린’ 난장판 정국은 갈수록 혼미해지는 양상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아직 남아있지만, 탄핵 당사자인 노무현 대통령은 물론이고, 탄핵을 주도한 국회의원들이 국민들로부터 이전의 신뢰와 애정을 회복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분노가 실망을 넘어 폭발 단계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광화문 일대에서 여중생 장갑차 사망사건이후 또다시 대규모 촛불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지방에서도 민의를 무시한 탄핵정국에 대한 항의시위가 들불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도심 다른 지역에서 대통령 탄핵 소추안 통과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모여 군중집회를 개최하는 등 국민여론이 분열단계를 넘어 ‘대결양상’으로까지 치닫는 수준에 이르렀다.

일부 성난 시민들은 승용차에 불을 질러 국회의사당으로 돌진하고, 탄핵소추안 통과 후 국회를 폭파하겠다는 협박전화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분신 자살 기도도 끊이지 않아 치안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탄핵 정국은 경제에도 불똥이 튀어 대외신인도 하락 우려까지 제기되는 등 모처럼 기지개를 켜던 경제계에도 타격을 입혔다. 이러다간 출범 1년을 넘긴 ‘참여정부호(號)’가 본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정치권의 주도권 싸움에 휘말려 좌초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중앙선관위가 내부적으론 대통령의 발언 내용이 선거법 위반이라고 단정하고, 언론 앞에서는 분명히 불법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에 보내는 서한에는 애매모호한 내용만 보냈다. 결과론적이지만 이와 관련한 오해의 소지가 남아있는데 이에 대한 언론의 지적과 대응이 한발 늦었다는 점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이나저나 이제는 정치권은 물론 사회 각계 각층이 평상심을 되찾아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무엇보다 여론의 향배를 쥐고 있는 언론이 먼저 나서서 합리적이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 국정 혼란의 실타래를 풀어가야 한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헌법재판소의 법률적 판단이 남아있기 때문에 언론부터 사태 해결을 위해 냉정한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는것이다.

총선 승리에 사활을 건 정치권이 무책임하고 근거 없이 내뱉는 주장을 아무런 여과 과정 없이 국민들에게 전달할 필요도 없으며, 사회 각 구성요소들의 갈등관계를 부추겨 위기감을 확대시켜서도 안 된다.

정치권 역시 국민들의 역량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국민들은 어떤 위기가 닥쳐도 극복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니고 있다. 이는 역사가 입증하는 바다. 정치권이 국민들을 선동하기 위해 무책임한 정치적 발언만 일삼다가는 결국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언론은 정치권에 이 점을 충분히 인지시켜야 한다. 청와대 역시 탄핵 정국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앞으로 보다 신중한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고 본다.

언론이 앞장서 미증유의 탄핵 사태가 몰고 온 국가적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우리의 주장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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