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비판적 보도에 잇다라 소송 언론기능 위축 우려
길들이기 의혹 속 언론 위축 우려
검찰과 경찰이 언론 보도에 잇달아 소송을 제기해 언론 본연의 비판 감시 기능 위축에 대한 언론계·학계·법조계·시민단체 등의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검사들의 소송 청구는 올 들어 급증 추세인데다 고액 경쟁 양상까지 보이고 있어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이미 KBS(납득못할 영장기각·1억 원 배상판결), MBC(대전법조비리·5억 원 제소), 조선일보(조폐공사 파업유도·36억 원 제소) 등이 곤욕을 치르는 상황에서 서울지검 형사4부(부장검사 김태현) 소속 검사 10명은 지난 19일 한겨레신문사와 사회부장, 취재기자 2명을 상대로 22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검찰은 한겨레 9월 16일자 1판 '검찰 자기 식구 싸고돌기?' 상자기사는 "악의적 허위보도"라며 손해배상과 함께 정정보도를 강제집행할 수 있도록 법원에 요청했다. 당시 검찰의 항의를 받은 한겨레는 시내판에서 '혐의 알선 뒷돈 검찰직원 구속' 스트레이트 기사로 교체했다.
한겨레 사회부 배경록 차장(법조팀장)은 21일 "사실(fact)을 둘러싼 공방이 아니라 수사 결과에 문제를 제기한 것인데도 소송을 제기한 것은 언론의 비판 기능을 제거하려는 의도로 보여진다"며 "사전 협의나 정정보도 요청없이 곧바로 소송으로 이어진 것은 다분히 감정적 처사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 항의를 받아들여 시내판에 판갈이를 통해 성의를 보였음에도 이례적으로 소송을 동원한 것도 유감스런 일"이라고 검찰의 과민반응을 지적했다. 반면 김태현 부장은 22일 "한겨레 법조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윗선의 지시로 기사가 작성된 보도 경위를 납득하기 어렵다"며 "정당한 비판기능 수행으로 보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김 부장는 "언론중재위 절차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것"이라면서 "조선일보와 MBC 등의 사례도 소송 전 참고했다"고 밝혔다. 언론계의 비판기능 상실 우려에 대해서는 "언론이 위축될 게 뭐가 있냐"면서 "현재로선 화해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경찰도 종전과 달리 무더기로 소송을 제기해 언론과 '일전불사'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향신문 9월 17일자 가판 1면 머리기사 '경찰, 휴대전화도 감청'을 상대로 4억 원을 청구한 경찰청 외사국 실무자 3명 가운데 1명은 "오보로 인사상 불이익을 당해 경찰에서 출세는 틀린만큼이번 소송을 끝까지 가겠다"며 사표까지 제출한 상황이다. 기사를 작성한 정치부 정길근 기자는 "경찰의 징계위 회부도 신속하게 처리되고 단순 실수를 중징계하는 등 의혹이 가시지 않는다"며 "최대 현안인 감청 논란의 추이를 지켜본 뒤 사실 무근이라면 정정보도할 용의도 전달했는데도 법정 공방으로 몰고 간 점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밖에 경기도 파주경찰서에선 한겨레 7월 8일자 '정신못차린 투캅스' 보도에 1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며, 중앙일보(씨랜드 화재사건), 문화일보(경찰청 정보국 때아닌 물갈이)를 상대로도 한때 소송 제기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주북부경찰서 소속 경찰관 2명은 전주 MBC 기자를 공무집행방해와 현주건조물 무단침입 혐의로 전북경찰청에 고소했다가 언론계와 지역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취하했다.
국가기관 특히 검찰과 경찰의 잇딴 제소에 언론계·학계·시민단체는 반대 입장이 분명하다.
배금자 변호사는 "합법적인 반론권이 있는데도 검찰 등 공무원들이 명예훼손 소송을 쉽게 내고 또 법원이 이를 쉽게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며 "판사들이 뉴욕타임스 판결에서처럼 '언론이 숨쉴 공간'을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배 변호사는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언론보도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며 이는 권력기관의 비리 은폐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았다. "피해자는 언론인인 동시에 국민이다"라고 말했다.
이효성(성균관대 언론학) 교수는 "미국의 경우, 악의적 보도 입증 책임이 언론사가 아닌 원고에게 있을 정도로 국가기관 또는 공인에 대한 언론의 비판·감시 기능을 보장하고 있다"는 예를 들어 관리들의 소송 자제를 촉구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김주언 사무총장은 언론 자유 위축을 우려하며 "국가기관 소속원들의 집단 소송은 언론 길들이기 의혹을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언론노련 유상덕 부위원장은 한겨레 검찰 기사를 거론하면서 "그 정도도 보도하지 못한다면 국민의 알권리 충족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또 "소송액을 보더라도 언론에 대한 엄포용이나 재갈 물리기 의도가 눈에 선하다"며 "국가기관에서 의견을 조율, 공동대응하는 듯한 인상"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법조계 한편에서는 사회 민주화의 과도기적 현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과거 같으면 보도 책임자를 불러 협박했겠지만 지금은정상적인해결과정을 밟고 있지 않냐는 것이다. 다른 면에서 보면 언론에 '감히' 소송을 제기해도 과거처럼 비리가 밝혀질까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검찰 등 공기관이 떳떳해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고 법조인들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의 부작용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소송 당사자인 한 신문사 편집국장의 발언에서 잘 드러난다. "솔직히 위축된다. 사회부, 전국부 등 부서에선 위축이 더 심할 것이다. 이번 소송 후 피의자는 모두 가명처리하도록 지시했다. 나이도 적시할 필요없고 주소도 시-구 정도만 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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