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주장]'스타'의 취재 • 보도 관행

미국 프로야구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병현 투수가 사진기자를 폭행한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만일 김병현씨가 실제로 폭력을 행사했다면 이는 당연히 비난받아 마땅하다. 누구라도 폭력이란 물리적 방식을 통해서는 자신의 정당성을 얻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김 선수 측은 '폭행'이 아니라 '실랑이'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각기 다른 주장을 하는 목격자도 나타나 사건은 더욱 복잡해지는 양상이다. 어느 쪽 주장이 팩트인 지는 경찰의 수사가 마무리돼야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 이번 사건은 우리가 그동안 '관행' 혹은 '상식'이라고 여겨온 것에 대한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새삼스럽지만 신문윤리강령에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야 하며, 동의 없는 촬영이나 취재보도를 금하고 있다. 다만 공인(公人)의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실천요강 제12조)

바로 이 '공인'이란 점 때문에 고위공직자 뿐 아니라 스포츠스타나 연예인들도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언론의 관심거리가 되며 일반인들의 입방아에 오른다. 당연히 그들의 프라이버시는 위축된다. 그렇다면 왜 '공인'은 이런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것일까? 공인이 하는 행위는 '공공의 이익'과 많은 연관이 있다고 인정되기 때문이다. 스타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공공의 이익'과 무슨 연관이 있느냐고 항변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예컨대 우리 청소년들에게 스포츠스타나 인기 연예인의 영향력은 막대하다. 청소년은 우리의 미래다. '우리의 미래'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는 스타는 그래서 '공익'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공인'과 '공익'이란 논거를 전가의 보도(寶刀)로 삼아 스포츠스타나 연예인에 대한 막무가내식 보도를 일삼는 것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 또 우리 언론의 보도 관행은 자성할 부분이 없는 것일까?

예를 들자. 언론의 보도에 등장하는 인물은 누구라도 통상 이름 뒤에 '씨'라는 의존명사나 직함을 붙이게 된다. 하지만 체육인·연예인들은 그냥 그들의 이름만 나온다. 나이의 많고 적음 등과 상관없이 그냥 아무개다. 한국의 축구선수 야구선수 씨름선수 탤런트 가수 영화배우 개그맨들은 그 흔한, 이름 아래 써서 존경의 뜻을 나타내는 '씨'란 말과 인연이 없다. 심지어 오래 전에 연예계를 은퇴한 한 재벌가의 며느리를 다룬 기사에서도 달랑이름석자만 등장한다.

연예인들은 가명이 많다거나, 스포츠선수에 대해 '씨'라는 호칭을 안 붙이는 것은 오래된 관행이기 때문에 오히려 호칭을 붙이면 어색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관행이 이들을 세칭 '딴따라'라고 폄하하는 주류집단의 집단적 무의식 때문이라면 문제는 다르다. 스포츠맨이나 연예인을 보는 이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운동만 잘하는 사람', '얼굴만 잘난 사람'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반말로 호명하는 것은 괜찮다는 인식이 굳어진 것이어서는 곤란하다는 말이다.

이는 마치 서울과 지방의 위계적 관계설정과 비슷하다. 지방사람이 서울 갈 때는 '서울 올라간다', 서울 사람이 지방 갈 때는 '지방 내려간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스포츠맨이나 연예인을 왠지 '아래'로 인식하는 편견은 극복돼야 할 일종의 신화(myth)다. 기자나 언론사가 그 신화에 함몰돼 있는 것은 아닌 지 성찰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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