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인생살이에 비유한다. 드라이브 샷에서 젊음과 활력을, 벙커샷에서는 좌절과 극복을, 퍼팅에서는 안타까움과 정성을 교차해 느끼며 심지어 컵 직경 108mm에서 불가(佛家)의 108번뇌를 연상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몇 년전 한 경제부처 장관과 출입기자들의 오찬 회식자리가 있었다. 관례대로 폭탄주가 서너순배 돌고 취기가 오른 그 장관은 골프와 남녀관계를 비유한 성적인 농담으로 자신의 인생철학을 펼쳤다. 그 '유능한 고급관료'는 심지어 그 자리에 참석한 여기자에게 여성적인 매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안경을 벗으라는 등의 패션 처세철학까지 조언했다.
당시 그 여기자는 장관의 성희롱적인 발언에 대해 불쾌했지만 차마 자사 지면에는 쓰지 못하고 기자협회보 '잠망경'난에 조그맣게 썼다. 그러나 곧 그 출입처 공보실로부터 애원에 가까운 집요한 로비를 받고 그 사건은 더 이상 확대되지 않았다.
그 여기자도 출입처 관리를 해야 이후 공보실과의 관계가 수월해질 터이므로 그쯤은 이해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기자로 입문한 사람에게 출입처와의 관계조차 원만치 않은 '무능한(?) 기자'가 되라는 것은 자살하라는 것보다 더 무리한 요구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찌됐건 그 후 그 '유능한 장관'은 정치인으로 변신, 현역 국회의원이 됐다. 그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지금도 정치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정당의 중앙위원이란 중요한 자리에 있다. 더구나 그는 관료시절 뛰어난 여성정책 업적으로 여성단체로부터 공로상을 받은 전력도 있다.
이런 아이러니는 전직 장관 출신의 그 특정 정치인 한 사람에게만 있지 않을 것이다. 골프를 좋아하는 남성이라면 그가 여당이든 야당이든, 또는 개혁지향의 관료이건 보수지향의 관료이건, 또는 그가 정치부 기자이든 경제부 기자이든 상관없이 모두 대동소이하다는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볼 때 문제의 본질은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돈과 권력을 가진 남성들이며 우리 사회의 돈과 권력이 움직이는 곳을 취재하는 기자들 역시 남자들로 '그 남자들'이 또 다른 '그 남자들'과 함께 골프를 치면서 '그들만의 연대'를 형성한다는데 있다. 여성은, 출입기자 조차도 '그들만의 연대'의 현장에서 종종 안주거리로 전락하는 것이 우리의 숨길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우리 사회를움직이는 것이 돈과 권력인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 그 돈과 권력은 뿌리깊게 여성을 소외시키는 남성중심문화로 속속들이 굳건하게 자리잡았다. 거기에 기자들이 취재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특종사냥을 위한 네트워크 마련의 명목으로 그들의 옳지 못한 연대에 야합하고 있는 것이다.
신문을 제작하면서는 정치개혁과 사회정의를 입버릇처럼 외치던 데스크가 휴일을 앞두고서는 "어디서 골프치자는 전화 안 오나"라며 고개를 좌우로 둘러보는 모습은 한마디로 추하다. 촌지는 옳지 않다고 인식하면서도 기업체로부터의 풀 코스 골프접대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의식의 이율배반은 여전히 기자사회를 압도하고 있다.
언론개혁의 필요성은 골프장에서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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