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 그의 발언이 연일 주요 뉴스로 다뤄지고 있다. ‘노령과 경륜의 대통령’ 시대에서 ‘50대의 개성 강한 대통령’의 시대로 바뀌면서 아마도 이런 현상은 예견된 듯 했다. 그중 압권은 지난달 21일 각계의 집단행동이 격화하자 5·18단체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직을 못 해먹겠다는 위기감을 느낀다”고 말한 것이었다.
이 발언은 많은 언론매체의 1면 톱과 머리 뉴스로 보도돼 일파만파로 국정 위기감을 증폭시켰다. 일각에서는 언론이 ‘못해먹겠다’는 어구만 강조해 결과적으로 국민적 불안만 부채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언론은 그것도 모자라 연일 사설과 각계의 의견을 담은 비중있는 해설기사로 논쟁을 더욱 확산시켰다. 이창동 문화부 장관은 이같은 언론의 편집방식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다가 야당으로부터 편집권까지 간섭한다는 역공을 받을 정도였다.
다른 때 같으면 가십에 그쳤을 사안이 왜 지나칠 정도의 비중으로 보도돼 ‘진짜 위기’로 확산됐을까. 가장 큰 책임은 물론 세련되지 못한 표현으로 비판의 빌미를 제공한 대통령에게 있다. 대통령의 말은 국가 최고통수권자로서 국민과 이해집단, 심지어 투자를 저울질하는 외국인들에게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그의 말은 충분한 절차탁마의 과정을 거쳐 신중히 표현돼야 하는 게 옳다.
그러나 발언의 부적절성과 언론의 과잉대응은 또 별개 문제다. 우리는 그 발언에 문제가 있더라도 그것을 지나치게 부각시킨 언론의 의제설정 과정에 큰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게이트 키퍼 역할을 하는 편집진의 고정관념과 선정주의가 적지않게 작용했다는 결론이다.
최근 청와대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의 발언록에서도 드러났듯이 편집책임자들은 역대 대통령의 이미지에 익숙해져 대통령의 말은 항상 근엄해야만 한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전례에 비춰 언제든지 더 파장이 큰 ‘튀는 발언’이 나올 수 있다는 선입견과 대통령에 대한 반감도 이같은 편집에 영향을 미쳤으리라 여겨진다. 최근 노대통령은 “참여정부의 언론정책으로 언론인들의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것”이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언론인들은 전부는 아니지만, 흔히 고위간부가 될수록 보수화되는 경향이 짙다. 고시출신이 아닌 ‘비정통파’ 장관이나 ‘비주류’ 출신 지도자에 대한 편견도 강하다. 그만큼 그들에 대한 업무 평가도 “그것 봐라”하는 식으로 냉혹한경향이 있다.
국민이 ‘비주류-서민-50대 출신’ 대통령을 선택한 이상 대통령제 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의 실패는 곧 국가와 국민의 실패로 이어진다. 편집진에게 당부하고 싶다. 시대가 변한만큼 보도와 논평에 있어 새로운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의식과 정서에 부합할 수 있다. ‘낯선 대통령’의 발언 자체를 희화화하기보다 발언의 진의를 먼저 따져보고 건전한 비판을 통해 국가발전을 추동하는 게 정도이다. 판단의 잣대가 과거의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거나 편견이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면 언론은 시대를 선도할 수 없다. 편집진의 유연한 사고와 넓은 시각을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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