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살리려면 홍사장 물러나야'
언론계 충고 ··· 지면에서 각사마다 미묘한 입장차 엿보여
"개혁 조치 일환으로 평가한다, 홍석현 사장 퇴진이 최상책이다."
기자협회가 17·18일 회원사 기자 5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언론계 긴급 의견 조사에서 이구동성으로 나타난 결과이다. 17일 홍 사장 검찰 고발 사건을 두고 기자들은 "엄청난 파장을 담고 있는" "희대의 사건" "개혁 의지를 확인한 결과" 등으로 표현하며 원칙대로 처리한 정부 방침을 높게 평가했다. 동아일보 기자는 "당장의 언론개혁이 아니라 이번 일을 계기로 추진력 얻어 재벌개혁 등 일련의 개혁 작업을 끌어가는 맥락으로 이해한다"면서 "개혁의 전제조건으로 도덕성을 담보하지 않고 무슨 일을 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세계일보 기자조차 "이 정도로 고강도라면 (우리가 당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면서 "곽정환 전 부회장, 이상회 전 사장 등 회사 탈루 혐의 처리에 부담이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기자들은 중앙일보의 '언론 표적 탄압' 주장을 궁색한 대응으로 여겼다.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는 "약점 잡힌 상황에서 명분이 없다"면서 중앙일보 주장을 일축했다. 국민일보 한 차장도 "중앙일보가 즉자적인 대응보다는 상황을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홍 사장의 처세는 '퇴진'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경향신문 중견 기자는 "회의에서 홍 사장 퇴진이 정상적이지 않는가 하는 얘기들이 나왔다"고 소개하며 "그래야 신문 제작도 당당해진다"는 의견이었다.
초미의 관심사인 홍 사장의 구속 여부에 대해 검찰출입 기자들은 중수부 간부의 말을 인용, "최근 분위기로 미뤄볼 때 정치으로 해결될 것 같지는 않고 당장 20일부터 내달 중순경까지 수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며 93년 경향신문 김승연 회장 구속 수감에 이은 현직 발행인 구속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쳤다.
신문 지면에서는 이같은 여론이 일부 걸러진 결과를 보였지만 대부분 비중있게 처리, 모처럼 '언론 강철 연대'에서 벗어났다. 다만 일부 신문에선 가판과 시내판의 지면에서 회사의 입장에 따라 고심한 흔적을 보인 곳도 있다. 가판과 시내판을 통틀어 주목할만한 공통점은 전 신문이 탈세혐의를 1면에 다루었고 안쪽 해설과 상자 기사들에서는 대부분 차명계좌 1071개로 변칙 거래한 점을 부각시켰다. 경향신문·동아일보·대한매일·조선일보·한겨레 등은 모두 1면 머릿기사로 다뤄 가장 큰 뉴스로 판단했다. 한 신문사부장은"탈법 행위로 중앙 언론사 사장을 고발했고 국세청의 조사자료도 상세했다"며 "세무조사 착수 이후 궁금증과 관심이 많았는데 막상 뚜껑을 여니 예상외로 샅샅이 조사한 것으로 나타나 객관적으로 가장 큰 비중을 가진 기사로 편집회의에서 결정됐다"고 자세한 경위를 설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언론들이 대부분 톱으로 처리해 성의있게 보도한 것"으로 평가했다.
가판과 시내판에 가장 큰 차이를 보인 곳은 역시 '동병상련'의 세계일보다. 세무조사가 진행중인 가운데 곽정환 전 부회장, 이상회 전 사장 횡령 혐의와 탈루 혐의로 검찰 소환설이 나오는 세계일보에는 가판에서 1면 스트레이트 이외 일체 관련기사가 등장하지 않았다. 중앙일보사에서 각 언론사에 배포한 해명자료도 기사화하지 않았다. 시내판에서야 4면 전체를 털어 '의미-파장, 일문일답, 중앙일보 해명문' 등을 실었다. 조희준 회장이 노동부에 고소된 국민일보도 가판보다 시내판에서 비중을 키운 경우. 1면 최하단 2단 기사를 3단으로, 10면에 작은 상자기사 하나를 관련기사로 내보냈다가 시내판에선 5면으로 앞당기면서 거의 한면 전체를 할애하는 변화를 보였다. 한국일보는 가판 '보광그룹 홍석현 씨 탈세 고발' 1면 제목에서 '홍석현 씨' 이름을 빼 주었으며 3면 제목은 '국세청 초유의 강력한 칼 뺐다'에서 '탈세불용 국세청 강력한 칼 뺐다'로 조절했다.
순발력을 발휘, 사설을 다룬 신문은 대한매일과 한겨레다. 두 신문은 각각 '보광 탈세 충격과 파장', '놀라운 언론사주의 탈세'를 통해 "정론을 생명으로 하는 언론사가 더 이상 탈세 등의 방법에 바람막이가 되거나 치외법권이 될 수 없으며 언론도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할 때" "검찰은 사안의 중대성을 비추어 공금유용 혐의를 포함한 모든 혐의점을 엄정하게 조사하는 등 언론사주라 하여 법집행에서 성역이 될 수 없도록" 당부했다.
당사자인 중앙일보는 가판 제목에서 타신문이 모두 '보광그룹'으로 표기한데 반해 유일하게 '중앙일보 사장'임을 강조하며 한나라당과 연결, '특정 언론 표적 탄압' 기사를 실었다. 타사 기자들은 중앙일보의 보도를 '반발'이 아닌 '자위' 정도로 인식했다.
전반적으론 호화주택 55억원 부분에 대해서는 주요 제목으로 반영되지 않는 등 비교적 편집에선 담담하게 처리해 '즐기지만 표정관리'에도 신경 쓴흔적이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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