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코로나 재난 닥쳤지만, 서울과 지역은 출발선 달랐다"
[코로나19와 지역기자들] 재난 속에서 또 재난 겪는 '비 서울' 언론…
국민 절반 사는 지역의 목소리, 계속 소외되며 사라진다
서울이 아닌 어떤 도시 이야기. 그곳에서 살면서, 그곳에 대해 기록하는 이들의 이야기. “기자 양반이면 코로나19 선별 진료소도 다녀왔을 거 아녜요?” “말 걸지 말고 오지도 마세요.” 최근 재래시장 상인들 인터뷰를 하려다가 기자는 ‘욕받이’ 신세가 됐다. 하루 한 자리 수 확진자가 나오던 광주에선 IM선교회발 여파로 최근 갑작스레 100여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떨어지면 사정이 나아질까 기대했던 소상공인들 분노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동네 주민 하나하나의 얘길 담을 수 있었던 살가운 분위기 대신 “암묵적인 확진자” 취급을 받는 나날. “저는 월급쟁이라 따박따박 월급이 나오는데 죄스럽다. 같은 데서 사는 분들인데 워낙 상황이 안 좋으니…마음은 이해되는데 ‘난 내 일을 해야 되는데’ 싶고, 쉽지가 않다.”
사회부 기자는 5명. 매일 광주광역시 내 5개 구로 취재를 나간다. 사진기자는 편집국에 1명뿐이라 부서별 지면 사진은 취재기자들이 찍어야 한다. “사회부 기자들은 이미 2~3번씩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두 달 동안 얼굴을 못 본 사진부 기자는 한 달에 한 번씩 검사를 받는다고 한다.” 인력이 부족하니 기자 당 현장 방문 횟수가 더 잦다. 코로나 상황에서 위험에 노출될 빈도를 높이는 일이다. “다 좋은데 우리 회사는 매일 그렇게 취재나간 기자들을 다시 회사로 모이게 한다. 수도권은 아예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는데 지역이라 안이한 건지. 매일 찝찝한 데 흩뿌려졌다가 다시 집합을 하는 느낌이다.”
얼굴 다 아는 기자들이 모인 서울 아닌 곳의 기자실. 기자들은 ‘어느 휴대용 코로나 키트가 좋더라’ 얘길 나눈다. 그렇게 버티며 ‘기자의 일’을 한다. 코로나 상황에서 현장을 찾고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하는 이들은 서울이든 서울이 아니든 공유하는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다만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재난이 닥쳤을 당시 초기 조건이 같지 않았다는 점이다. ‘서울이 아닌 곳’으로만 존재할 수 있었던 지역 소외, 불균형의 문제는 유구하다. ‘비 서울’ 언론이 걸어온 길은 이 자장 안에 놓인다. 코로나19를 마주한 지역 언론의 경영난, 기자들의 어려움을 통해 이 현상의 한 축을 들여다본다.
◇지역언론 경영난...올해도 다르지 않다
“부럽고 답답하다.” 경기 지역 언론사에서 일하는 A 기자는 요즘 부쩍 그런 감정이 든다고 했다. 서울에선 언론의 가치나 저널리즘, 언론다움을 얘기하는데, 지역에선 그 이전에 생존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현실이 답답하다고 했다. 회사 경영진부터 젊은 기자들까지, 어떻게든 여건을 풀어보기 위해 이것저것 해보고 있지만 신통치도 않고, 훌륭한 콘텐츠와 수익을 동시에 추구하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코로나19로 지역 기업들의 경영이 어려워지고 광고 수입이 급감하며 애초 약했던 지역 언론사들의 존립 기반은 점점 위태로워지고 있다. 지자체 광고 의존도가 심화하며 할 말을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지만 생존 문제 앞에 저널리즘은 어느덧 배부른 소리가 돼버렸다. 급기야 지난해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일부 지역 언론사는 명예퇴직과 순환 유급·무급휴직, 감봉, 감면, 감부를 단행했다. 지역마다 사정은 조금씩 달랐지만 경남, 제주 지역의 여건이 특히 좋지 않았다.
제주일보는 지난해 4월 정부에서 고용유지 지원금을 받아 순환 유급휴직을 시행했다. 제주일보 B 기자는 “제주 지역 최대 광고 고객이 관광사업체 쪽인데 지난해 어렵다 보니 코로나 이전보다 광고 매출이 50% 정도 줄었다고 하더라”며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때문에 회사에서 주최·주관하던 행사를 못 하면서 협찬 수입도 덩달아 축소됐고, 경영이 힘들어지니 직급에 따라 한두 달 임금이 밀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부산·울산·경남 쪽 지역 언론사들 역시 2~3곳 빼곤 지난해 모두 적자가 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마산 창원 거제 등 경남 지역은 작은 생산 업체들이 많은데 다수의 업체들이 구조조정도 하고 폐업도 하면서다.”(KNN C 기자)
사정은 올해라고 딱히 나아지지 않았다. 지난해 노사 합의로 휴업이나 임금 삭감 등을 통해 적자 폭을 줄였지만 상당수 언론사들이 적자가 나면서 지역 언론 종사자 대다수가 올해 역시 비슷할 것이라 내다봤다. 지난해 하반기 직원 임금 21%를 삭감한 MBC충북은 올해 10% 삭감으로 출발했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하반기 비상경영 체제로 전환할 방침이다. “지난해 인건비, 업무추진비도 줄이고 UHD 투자나 뉴스 등을 줄이는 등 전체적으로 경영을 슬림화했는데 올해 역시 뾰족한 수는 없을 듯해 걱정이다. 직원들 위기의식도 높고 하고자 하는 의지는 있지만 내부적인 노력만으론 타개될 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MBC충북 D 관계자)
지난해 정부의 고용유지 지원금을 받은 언론사들은 올해 또 한 차례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고, 노사가 이미 지원금 신청에 합의한 곳도 있다. 지난해 순환 유급휴직을 시행했던 경남일보는 “올해도 기준만 충족되면 회사가 고용유지 지원금을 신청하기로 노사가 합의했다.”(경남일보 E 기자)
최근 각 사별로 이뤄진 임금 협상에선 회사 사정을 고려해 임금을 동결하거나 아예 무교섭 타결을 이룬 곳도 상당수다. 전남일보 F 기자는 “각 사별 임·단협에서 대부분이 임금 동결로 갔다. 저희도 최근 임금을 동결하기로 합의했다”며 “직원들도 반발보다는 대부분 수긍하는 분위기다. 지난해는 어떻게든 버텼는데 올해 그대로 반복되면 감원이나 임금 삭감으로 가는 언론사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가 심화시키는 인력난 악순환
순환 휴직 등으로 인력난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필수인력을 제외한 109명에게 평균임금 70%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순환 유급휴직을 시행 중인 경인일보에선 매달 10~20명 인력이 갑자기 빠지며 “남아 있는 사람들이 힘들어 하고 있다.” “네이버 입점을 위해 맞춰야 하는 조건들이 있어 부담은 그대로고, 지면도 매일 채워야 하는데 사람이 없다. 지면 감면 얘기도 있었지만 20면에서 16면으로 감면을 하자니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을 것이란 생각에 시행하지 못했다.”(경인일보 G 기자)
MBC충북에선 “회사가 어려우니 사업이나 미래전략 부문 등 수익사업 영역으로 기자, PD 등 제작인력이 파견을 갔다.” 지난 두 해 보도국 10명 중 3명이 관두는 일까지 겹치며 “기자 수가 너무 적어졌다.” 자체 제작물로서 좋은 기사나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언감생심이다.
정규직 기자들 사정이 이런데 계약직 고용이나 신규채용이 있을 리 만무하다. 경남일보는 정년 이후 촉탁직으로 일하던 기자들과 계약을 종료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계속 함께 했을 사람들”이 떠났다. 회사는 “인력이 줄어든 부분에 대해선 특별한 일 아니면 충원이나 신규채용은 없다”고 말한다. “동료 선·후배 기자들에게 뭘 요구하고 나무라기도 힘들다. 그러다 나가버리면 안 뽑아주니까, 잡아야 하니까 그냥 넘어간다. 지면을 채우기 급급해지니 질적 하락은 분명하다.”(E 기자) 충북 권역 통신사에서 일하는 H 기자는 “예전에 지역에서 열 곳이 채용을 했다면 지금은 두세 곳이 뽑고, 신입을 뽑는 곳은 하나 정도다. 9~10년차 기자가 막내 기자가 되고, 그 사람이 나가면 15년차 부장이 막내가 된다”고 말했다.
코로나19는 인력부족, 콘텐츠 품질 저하, 구독자 감소, 경영난 심화, 다시 인력부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더욱 고착화시키는 촉매가 됐다. ‘지역 공동체의 목소리를 담고 지역을 대변한다’는 지역 언론의 존재 이유이자 서울 언론에 비교우위로 설 수 있는 영역마저 붕괴한다는 게 가장 우려스럽다. “경기도 31개 시·군 각각을 기자 한 명씩 담당한다. 기관 이야기, 보도자료 위주로 돌아간다. 동네 얘기를 쓰면, 지역밀착형 기사를 쓰면 볼 거라고 생각했는데 회사는 취재 환경엔 신경 쓰지 않는다. 기자들이 얼굴을 비추고 지자체와 관계를 만들어 예산을 회사 이익으로 어떻게 연결할지에 급급하다. 지역의 한계가 기사의 한계가 되고 있다.”(경기 지역 신문사 I 기자)
최근엔 종이신문의 한계를 뉴미디어로 극복하기 위해 분투 중이다. 여기서도 ‘지역’이란 키워드는 중심에 온다. 뉴미디어부 기자 3명은 지난해 2월 총선 시기 ‘지역 친근 시사방송’인 오디오 콘텐츠(‘오디오 맥도날드’)를 선보였다. 200자 원고지 350매에 달하는 원고를 통해 지역 16개 선거구 후보자 74명 전원의 정보를 유권자에게 전달한 ‘신비한 후보사전’도 내놨다. 최근에도 그는 페이스북 비공개 그룹 ‘오맥과 친구들’을 만들고 묵묵히 돌탑을 쌓는 시도를 이어간다. 신중하게 초대된 10여명의 그룹엔 “콘텐츠를 소비해달라가 아니라 같이 고민하자”고 요구한다.
이 부장은 “지역 매체에선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대하지 않으면 답이 없다. 작지만 끈끈한 연대를 누적하는 방법이 돌파구가 되지 않을까”라며 “플래시 애니메이션으로 선보이는 시사 콘텐츠를 2주에 한 번씩 올리는데, 아예 시놉시스로 제안이 와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지역 언론 관련 토론회에선 ‘콘텐츠를 잘 만들면 사람들이 본다’는 발언이 여전히 나온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우수 사례로 거론되는 지역 매체조차 경영위기를 겪고, 코로나 국면에선 순환 휴직을 하는 게 현실이다. 서울 아닌 곳에서 일하는 기자들 입장에선 ‘노오력’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들릴 얘기들. 정작 그 ‘노오력’이 불가능한 조건과 구조를 개선하려는 시도는 드물었다.
결국 지역 언론의 현실은 지역 소외, 서울 중심주의란 문제의 증상이다. 이시우 경남도민일보 기자는 “왜 지난해 코로나 사태를 지역 언론이 맞았을까. 매출 비중 때문”이라며 “수도권 규제 완화 조치로 지역 경제가 어려워지니까 언론들은 비 콘텐츠 사업인 지자체 보조금 사업, 입찰 사업이 매출 30~40%를 차지하게 캐파(capacity)를 늘려 놨다. 집합 가능한 사업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전환해놨으니 초토화가 된 것”이라고 진단한다.
서울이 아닌 어떤 도시 이야기. 그곳에서 살면서, 그곳에 대해 기록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이대로 괜찮은지를 되묻는다. “지역에선 심각한 생존의 문제가 전국 단위 보도에선 메가 트랜드, 사건·사고 정도로 다뤄질 뿐이다. 제주에선 4·3사건에 대한 역사적 판결이 나온다. 강원도에선 동부구치소에서 이송된 재소자 중 확진자가 나와 영월이 뒤집어졌다. 남쪽에선 대학이 줄고 인구가 빠져나간다. 이 중요한 이슈들이 독자에게 도달 못하고 그냥 묻힌다.”(G 기자) 국내 최대 뉴스유통 플랫폼에서든 정부의 정책 차원이든 비 서울 언론의 역할과 이들에 대한 지원은 진지하게 논의되지 못했다. 그렇게 국민 절반이 사는 지역의 목소리는 오늘도 소외된다. 그렇게 사라질지 모른다.
최승영·강아영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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