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tvN ‘유퀴즈 온 더 블록’ 예능 프로그램에 기상청 예보관이 출연했다. 긴 장마와 연이은 태풍을 겪으며 올여름철은 예보 불신이 극에 달하기도 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예보관이 TV에 출연한다니 어떤 말을 할지 궁금했다. 설마 날씨를 열에 아홉은 맞춘다는 얘기를 할까 싶기도 했는데 예보관은 90%라는 구체적인 수치까지 언급하며 촬영 현장에 있던 모두를 놀라게 했다.
예보관이 제시한 정확도 90%는 엄밀히 말하면 강수 유무 정확도이다. 기상청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공개적인 값인데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90%를 밑돈 적이 없다. 이 믿기 힘든 수치는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됐다. 강수 유무 정확도는 비가 내린다는 예보를 내고 ①비가 내린 경우 ②비가 내리지 않은 경우,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예측을 하고 ③비가 내린 경우 ④비가 내리지 않은 경우 등 4가지를 모두 조합해 예보가 얼마나 정확했는지를 계산한 값이다.
문제는 ④의 경우인데 우리나라 날씨는 비가 오는 날보다 맑은 날이 훨씬 더 많다. 실제 지난해 서울에서 0.1mm 이상 비가 온 날을 기상청 홈페이지에서 세어보니 98일 밖에 되지 않았다. 내일 서울에 비가 오지 않을 거란 예보를 별 생각 없이 1년 내내 똑같이 냈더라도 정확도는 약 74%에 달한다. 비 구경하기 힘든 사막에서는 100% 근접하는 강수 유무 정확도가 나올 수도 있겠다. 결국 ④의 경우에 해당하는 이 쉬운(?) 예보를 정확도 계산에 끼워 넣다보니 90% 넘는 수치가 계산됐다.
그래서 정확도가 아닌 적중률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기상청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순 없고 국정감사철에나 공개되는 값이다. 최근 국정감사에서도 강수 유무 적중률이 공개됐는데 지난 8년간 40%대에 머물고 있다. 2017년에는 심지어 39%까지 떨어지기도 해 90%를 넘는 강수 유무 정확도와는 큰 차이가 난다. 비와 관련 없는 맑은 날은 빼고 실제로 비가 내렸거나 비를 예보한 날만 따져 계산하는 것으로 ④의 경우를 제외한 정확도 값이다. 40%대 정확도라면 내 무릎이 슈퍼컴퓨터보다 날씨를 더 잘 맞추겠다는 얘기도 충분히 나올 법 하다.
소위 기상 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의 강수 유무 적중률은 높을까. 산정 기준이나 시기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미국의 강수 유무 적중률은 0.5인치(6.3mm) 강수량 기준으로 44.4%로 성적표가 영 신통치 않다. 기상청 입장에서는 공부 잘하는 쟤네도 40점대인데 우리 정도면 선방하는 것 아니냐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 해도 올여름 자국 예보에 대한 불신으로 기상망명족이 생기고 노르웨이나 체코의 날씨 어플을 확인하는 지경까지 갔는데 이런 와중에 40%대 예보 성적표까지 공개적으로 발표한다는 건 그야말로 불난 집에 기름을 들이 붓는 꼴이 될 수 있다. 너무 높은 정확도는 믿지를 않고 또 너무 낮은 적중률은 조롱거리가 되는 상황이다.
기상청은 지난 2017년 감사원 감사에서 강수 예보적중률이 46%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받은 뒤 매월 예보정확도를 검증하고 평가지수를 국민에게 공개하겠다고 이미 한차례 밝힌 바 있다. 2년이 지난 올해도 똑같은 지적과 요구를 받고 있는 것이다. 김종석 기상청장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강수 유무 적중률을 발표할 경우 기상청이 50% 이하 예보를 하고 있다고 오해해 신뢰가 떨어질 우려가 있다”면서도 “향후 정확도와 함께 적중률도 공표하겠다”라고 약속했다. 국민들이 “거봐 역시 40% 밖에 못 맞혔네” 할지 “이제라도 잘할 필요가 있겠네”라며 낮은 성적표를 공개한 것을 응원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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