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박용택은 왜 은퇴 투어를 하지 못했나

[이슈 인사이드 | 스포츠] 양지혜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양지혜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양지혜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네이버가 지난달 27일부터 스포츠 뉴스의 댓글 기능을 없앴다. 댓글 없는 뉴스는 ‘침묵의 007빵’ 게임을 닮았다. 말문 막힌 네티즌들은 “읍읍”대며 뉴스 이모티콘(좋아요, 슬퍼요, 화나요 등)으로만 감정을 표현한다. 악플의 넛지 효과가 사라져서인지 요즘 야구 뉴스에선 시뻘건 ‘화나요’ 이모티콘이 도드라지지 않는다. 그러자 떠오른 궁금증. “댓글 기능이 좀 더 일찍 사라졌다면, 박용택의 은퇴 투어가 가능했을까.”


지난달 초 프로야구선수협회가 LG 박용택(41)의 은퇴 투어를 준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네이버 야구 뉴스란이 뒤집어졌다. “무슨 자격이 있냐”는 비난 댓글이 대세였다. 지금까지 프로야구 10개 구단의 꽃다발을 모두 받고 은퇴 투어를 한 선수는 이승엽이 유일하다. 박용택은 ‘국민 타자’가 아니었고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도 없지만 2002년부터 19년간 LG 유니폼만 입고 총 2210경기 9106타석에 서서 타율 0.308 2497안타 213홈런 1187타점 312도루를 해냈다. KBO 최초 10년 연속 3할 타율과 7년 연속 150안타 기록도 세웠다. 음주운전이나 불륜, 도박도 안 했다. 하지만 네이버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반대 75.6%(찬성 22.7%, 기타 1.7%)가 찍혔다. 반대 응답자 2661명의 기세에 눌려 그의 은퇴 투어가 무산됐다.


“박용택은 졸렬해서 안 돼.” 반대하는 이들의 이유다. ‘졸렬택’은 2009년 9월25일 이후 11년째 박용택을 따라다니는 유령이다. 그날 서울 잠실에서 열린 시즌 마지막 경기에 LG 박용택은 안 나왔고 롯데 홍성흔은 고의 볼넷 4개를 얻어 박용택이 타율 1리(0.001) 차이로 타격왕이 됐다. 이를 ‘졸렬한 타율 관리’라고 비판한 뉴스가 입소문을 탔고, 그는 그날부터 졸렬택으로 불렸다. 한 자리에서 사인 1000개는 너끈히 하는 팬 서비스, 연말마다 하는 연탄 봉사와 기부 활동, 그리고 눈물의 반성에도 졸렬택은 건재했다.


국어사전은 졸렬(拙劣)을 ‘옹졸하고 서투른 것’이라고 정의한다. 박용택은 옹졸하게 야구했다. 정상에서 은퇴하지 않고 나이 마흔 넘어 안타 하나라도 더 치려고 악을 썼다. 광고택(이닝 종료 광고를 부른다), 찬물택(찬스에 찬물을 끼얹는다) 적폐택(출전 기회가 철밥통이다) 등의 별명이 생겨나도 꾸역꾸역 타석에 섰다. 월급쟁이 생활도 19년은 벅찬데, 박용택은 매년 신인이 100명씩 들이닥치는 야구장에서 19년간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다. 그의 방망이는 버티고 버티는 ‘존버’의 결실이다. 홈런왕 이승엽은 타고나야 하지만, 누적왕 박용택은 노력하면 가능하다.


진짜 졸렬함은 야구장 밖에 있다. 법정에서 “형사소송법 148조에 따르겠다”를 303차례 반복하며 증언을 거부한 전직 법무부 장관이자 현직 법대 교수, 성범죄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고 우기는 정치인 등이야말로 정말 졸렬하지 않은가. 박용택은 기자들 앞에서 “졸렬의 뜻을 사전으로 찾아봤는데, 내가 졸렬했음을 인정한다. 은퇴 투어는 제안받은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말해 자신을 둘러싼 논란을 직접 끝냈다. 그는 그렇게 졸렬함의 낙인에서 스스로를 구원했다.


박용택의 야구가 이제 30경기밖에 안 남았다. 그가 최후의 타석까지 졸렬하게 야구하기를, 그래서 통산 2500안타 고지와 한국시리즈 무대는 꼭 밟아보고 떠나기를 응원한다.

양지혜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