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사미 여름 전망

[이슈 인사이드 | 기상] 김동혁 연합뉴스TV 기상전문기자

김동혁 연합뉴스TV 기상전문기자

▲김동혁 연합뉴스TV 기상전문기자

다사다망(多事多忙)했던 여름이 끝났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여기저기서 물난리를 겪었다. 여름의 시작부터 끝까지 국민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날씨였다. 지난 8년여 동안 다양한 날씨를 겪고 보도해왔지만 올여름은 그 정도가 심했다. 수많은 날씨 기록들이 새로 쓰였다. ‘기상망명족’들도 생겨났다.


기상청은 지난 5월22일, 계절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날씨 전망을 발표했다. 보도자료의 첫 타이틀은 <올여름 평년보다 무덥고 작년보다 폭염일수 늘 듯> 이었다. 무더위의 절정은 7월 말부터 8월 중순이고 올여름 강수량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적을 거라고 했다.


시작은 좋았다. 6월 초여름은 사실 굉장히 뜨거웠다. 평균기온, 평균 최고기온, 폭염일수 분야에서 관측 사상 1위를 기록해 기존 기록들을 모조리 갈아치웠다. 여름의 시작부터 역대 가장 더운 날씨가 펼쳐졌으니 다가올 한여름이 두렵다는 역대급 폭염 예고 기사들도 쏟아졌다. 첫 단추를 잘 꿰맨 여름철 전망이었다.


예상이 어긋나기 시작한 건 7월부터였다. 제주도는 역대 가장 빠른 6월10일에 장마가 시작했는데 관측 사상 가장 긴 49일간이나 장맛비가 내렸다. 6월24일에 시작한 중부의 장마는 8월16일에 끝나면서 가장 늦장마로 기록됐다. 평균 851mm로 역대 가장 많은 장맛비가 쏟아졌고 곳곳은 물바다로 변했다. 예년 같으면 장마가 종료되고 본격 한여름 폭염이 시작될 시기에 종일 비만 내렸으니 6월의 열기는 7월 들어 급격히 식었다. 사상 첫 6월보다 선선한 7월을 맞이했다.


7월22일에는 한여름 날씨가 왜 선선한지 원인 분석과 함께 장마철에서 점차 벗어나 8월 초부터 무더운 날씨가 많겠다고 예고했다. 역대 최장 장마와 전국적인 홍수 피해로 전망은 크게 빗나갔다. 일주일 뒤인 7월30일에 강수량이 평년과 비슷하거나 많을 것으로 전망을 상향 조정했지만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수해 현장을 찾아 기상청의 예보 정확도를 높일 것을 주문했다.


감당하지 못할 폭우가 연일 쏟아졌고 댐과 저수지는 넘쳐흘렀다. 주택 침수와 도로 유실 3만 건, 이재민 8100여명이란 최악의 물난리가 났다. 바로 코 앞 날씨 예보도 못한다는 기상청을 향한 불신은 급기야 ‘기상망명족’을 양산했다. 노르웨이 기상청은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 한국과 해외 기상청의 날씨 예보를 비교하는 보도들도 크게 늘었다. 지난 수년간 쌓여온 기상청을 향한 추상적 분노가 직접적인 행동으로 표출됐다.


기상청은 여름철 예보가 어긋났음을 국민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가을철 날씨 전망 브리핑을 통해 “기후 변화가 우리나라 인근 지역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갖게 됐다”며 “빗나간 예보로 피해가 발생한 부분에 대해 유감스럽고 죄송스럽다”고 했다.


기상청의 여름철 장기 예보는 3년 연속 빗나갔다. 당장 열흘 내 날씨를 맞추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3개월을 전망하려니 잘 될 리가 없다. 그렇다고 장기 예보를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기상청은 올가을엔 “9월 낮더위, 10~11월 큰 기온 변화”를 예고했다. 태풍은 평년 수준인 1~2개 정도가 영향을 줄 것으로도 전망했다. 올가을 날씨 전망은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노르웨이, 체코, 미국, 일본 등으로 떠난 ‘기상망명족’들을 되돌리고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 가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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