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빚투'에 돌을 던지랴

[이슈 인사이드 | 금융·증권] 이혜진 서울경제신문 증권부 차장

이혜진 서울경제신문 증권부 차장

▲이혜진 서울경제신문 증권부 차장

요즘 자산시장에서의 ‘패닉 바잉’에 대한 기사를 흔히 본다. 집값이 더 뛸 것을 우려해 30대들이 허겁지겁 서울의 집을 사들인다는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주식투자와 관련해서도 퇴근 후 미국 주식 직구에 몰두하는 직장인, 내무반의 병정개미, 밀레니얼 주린이(주식초보), 신용대출로 5000만원을 당겨 동학개미 대열에 합류했다는 40대 이야기들은 엄청난 클릭 수를 끌어 모았다. 그만큼 공감하는 독자들이 많았다는 의미다.


물론 이런 기사들은 양면성이 있다. 이미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전달하지만 그 자체가 대중의 불안심리를 부추기기도 한다. ‘나 빼고 다하고 전국민이 부동산과 주식을 사서 돈을 벌고 있구나, 나만 뒤처지고 있구나’라는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을 은근히 부채질한다는 점에서 항시 경계심을 갖고 보도해야 한다. 그런데 기사가 아니더라도 온갖 인터넷 커뮤니티, 유튜브, 카톡방 등의 지인통신들은 투자 성공스토리를 끊임없이 전하고 있다.


넘쳐나는 투자 성공담 속에서 가장 큰 불안에 떨고 있는 계층은 누구일까. 바로 자산이 없는 이들이다. 전세계에 풀린 막대한 유동성으로 인해 부동산, 주식, 금 등 온갖 종류의 자산가격이 앙등하는데 집이 없거나 주식투자를 할 돈이 없는 이들은 더 큰 포모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은 부자가 되지 못해서 조급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계층으로 밀려나는 데 대한 공포가 크다. 그 불안이 패닉 바잉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증거는 바로 ‘빚투’다. 주식투자를 위해 증권사들로부터 돈을 빌리는 신용융자 잔고가 3월 말 6조원에 불과했으나 6월부터 급격히 불더니 최근에는 사상최대치인 16조원을 넘어섰다. 인터넷은행 등에서 손쉽게 빌리는 신용대출도 투자 쌈짓돈이 됐다. 결국 가계신용잔액은 지난 2분기를 기준으로 2년만에 가장 큰 증가폭을 나타내며 1637조원을 넘어섰다. 1년만에 80조원이 불었다. 이는 임차인의 보증금에 기댄 ‘빚투’인 갭투자 금액은 제외된 금액이다. 소비가 늘지 않는 상황에서 이렇게 빌린 돈은 결국 주식으로, 부동산으로 흘러갔다.


빚투의 위험성을 준엄하게 지적하는 기사 역시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자산이 없는 이들이 자산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유일한 지렛대인 빚을 활용하려는 그 절박한 심정까지 누가 비난할 수 있으랴. 노동 소득보다 자산수익률 증가 속도가 더 빨라진 시대에 개개인은 나름의 합리적인 경제적 선택을 하고 있을 뿐이다.


글로벌 위기 때마다 이뤄진 막대한 돈풀기에 따른 자산 인플레이션은 거대한 양극화를 반복적으로 초래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난 10여년간 완화적 통화정책이 불러온 결과로 2000년 말 기준 11.8조달러였던 미국 상위 1% 가계의 자산은 2019년 말 기준 36.3조 달러로 3배 이상 늘었지만, 하위 50%의 자산은 같은 기간 1.4조달러에서 1.6조 달러로 제자리 걸음을 했다. 금융위기보다 더 많은 돈이 풀린 코로나 위기 이후 양극화 문제는 심각단계로 격상될 것이다.


2013년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 전세계가 열광한 이유가 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포연이 가라앉은 후 자산가격 상승에 따른 경제적 승자와 패자가 명확히 갈렸다는 현실인식 때문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도 막대한 돈풀기라는 금융위기와 똑같은 처방으로 열릴 것이다. 마찬가지로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없는 우울한 상황도 반복될 전망이다. 이를 예감한 많은 이들이 빚투에 나서고 있는 요즘, 빚투의 위험성에 대한 계도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 원인과 해법을 헤아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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