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란해진 북한의 메시지 변화… 소통 능력 키워야

[이슈 인사이드 | 외교·통일] 맹찬형 연합뉴스 통일언론연구소 부소장

맹찬형 연합뉴스 통일언론연구소 부소장

▲맹찬형 연합뉴스 통일언론연구소 부소장

호모 사피엔스는 소통으로 살아남았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가 신체적으로 훨씬 강한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키고 승리한 인간종이 된 요인으로 고차원적인 언어 능력을 토대로 한 협동 능력을 꼽았다.


그 유전자를 물려받은 우리는 훨씬 복잡다기한 방식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말을 하고 편지를 쓰고 담화를 내며, 모바일 기기로 문자와 이모티콘을 날리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진과 동영상을 올린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전략적 함의가 담긴 소통이 이뤄진다. 각국 정부와 언론매체는 우방과 적국에서 나온 메시지를 신속하게 포착하고 정확하게 해석하는 능력을 갖추는 데 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한다. 한 국가의 메시지 해석 능력에 국민 집단의 생존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최근 북한 김정은 정권에서 나타난 메시지 변화 과정과 진폭, 전달 형식의 다양화가 흥미롭다.


우선 북한이 미디어를 활용하는 방식이 확 달라졌다. ‘New DPRK’ 계정의 7살 유튜버 ‘수진이’와 ‘Echo of Truth’ 계정의 20대 유튜버 ‘은아’는 자연스럽고 친숙한 영상으로 북한의 일상을 전한다. 대학생이나 사회 초년생 같은 모습의 ‘은아’는 유창한 영어로 서구 언론의 북한 보도를 반박하는 역할도 한다.


관영 TV도 달라졌다. 기상 캐스터는 세련된 복장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날씨를 전한다. 평소엔 일반 뉴스를 전하다가 직접 온천욕을 하며 새로 개장한 온천장을 소개하거나 요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아나테이너도 등장했다. 이제 ‘엄근진(엄숙·근엄·진지)’ 리춘히 아나운서의 시대는 가고 있다.    


북한이 지난 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주재로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무국회의를 최초로 공개한 것이나 지난달 18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비공개회의’ 논의 내용을 공개한 것, 6월23일 화상회의 형식으로 중앙군사위 예비회의를 열어 대남 군사행동 보류를 전격적으로 결정했다고 상세히 보도한 것도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이런 변화의 현시를 통해 북한은 자신들의 정책 결정이 시스템을 통해 이뤄지고 있고 정상국가적 절차를 밟고 있음을 보여주려 애쓰는 것 같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이어진 김여정 제1부부장의 거칠고 원색적인 대남·대미 담화, 일방적인 남북 통신선 단절,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해체 같은 난폭한 메시지도 던졌다. 7살 유튜버 수진이와 연락사무소 폭파의 간극이 너무 커서 이어폰의 한 쪽에서 동요를, 다른 쪽에서는 헤비메탈을 듣는 기분이다.


일련의 상황은 김 위원장의 대남 군사행동 보류 결정으로 일단락됐는데, 결산해보면 현란한 메시지 변화를 통해 결국 김 위원장의 절대적 권위와 결정권을 확인하는 효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요즘 북한은 내치에 주력하고 있고 대외 메시지는 잔잔한 편이다. 하지만, 11월 미국 대선을 기점으로 다시 변화의 진폭이 한껏 커질 것이다. 그런 만큼 이를 상대하는 쪽에서는 여유를 갖고 해석의 범위를 넓게 잡고 개별 사건에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자세가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에 도움이 될 것이다. 2020년 상반기의 남북관계를 돌아보면서 남북한이 함께 살아가려면 소통 능력과 인내심을 더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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