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경영혁신안을 발표했다. 여러 가지 방안들이 제시되었지만 핵심은 ‘비효율 제거’와 ‘수신료 인상’ 두 가지다. 둘은 적자에 허덕이는 KBS에게 당면한 과제이자 오랫동안 지적되어 온 해묵은 문제다. 곪을수록 치료가 어려워지는 상처처럼, 두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해결이 어려워진다. 또 수신료 인상의 전제로 항상 비효율 제거가 따라붙었을 정도로 두 사안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KBS는 다시 문제만큼이나 익숙한 답안을 손에 들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비효율의 상당 부분은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탓이다. 30년 전만 해도 국민들이 소비하는 영상 콘텐츠의 대부분은 거대 방송국이 제공했다. “사람들은 TV에서 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던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언급처럼 KBS가 국민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기가 이때다. 그 영향력만큼의 인프라가 필요했고 그 인프라를 유지하기 위한 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른바 ‘미디어 빅뱅’을 거치며 시장 상황은 180도로 변했다. 이젠 더 재미있고 유익한 영상 콘텐츠를 더 싸고 더 쉽게 소비할 수 있다. 넷플릭스가 퓨전 사극을 제작하고 유튜브에서는 단 하루 만에 평생 봐도 남을 만한 분량의 콘텐츠가 만들어진다. 이런 미디어 시장에 새로 등장한 선수들은 날렵한 몸매를 유지하며 빠르게 달렸지만 KBS는 제때 다이어트를 하지 못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며 수시로 구조조정을 해왔던 BBC와 대비되는 지점이다. KBS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우선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떻게 시간을 허비했는지, 어디에 잘못 투자했는지 밝히고 반성해야 한다. 더 빨리 대응했다면 고통은 그만큼 줄었을 것이다. 경영진은 급여의 20%를 반납하겠다고 했지만 판단을 미루다 실기한 대가는 그보다 크다.
어떻게든 비효율을 제거하고 나면 수신료 인상이 가능할까? 이는 KBS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민적 동의가 있어야 하고 정치권도 나서야 한다. 수신료 인상이 이슈가 됐던 2011년을 되돌아보자. 당시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KBS 지배구조를 확실히 개선하도록 방송법 개정이 선결조건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수신료 인상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수신료를 1000원 인상하기로 당시 새누리당과 합의한 바로 다음날 이를 뒤집으며 했던 말이다. 여야가 뒤바뀐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서 정권이 언론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확실한 방안을 입법을 통해서 강구하겠다”고 했다. KBS의 지배구조 개선은 비효율 제거와 함께 수신료 인상의 전제 조건으로 인식되어 왔다. 지난 총선에서 180석을 얻은 여당은 9년 전 언급한 ‘선결조건’을 이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니 망설일 이유가 없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제도적으로 구축하는 것이 우선이다. 지배구조 개선의 효과가 국민들에게 체감될 때라야 구체적인 수신료 인상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비효율 제거와 수신료 인상은 목표라기보다는 수단에 가깝다. 경영혁신에 매진하면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KBS가 국민들에게 제공할 가치다. 공정, 품격, 신뢰와 같은 가치는 미디어 시장이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역시 익숙한 답안이다. 이를 성취해야 할 주체는 경영진도, 정치권도 아닌 KBS 직원 모두다. “당신이 해답의 일부가 아니라면, 문제의 일부다.” 파타고니아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의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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