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건의 특종보다 한 건의 오보를 경계하라. 언론계의 오랜 금언이다. 한겨레 ‘윤석열 별장 접대 보도’ 사과가 결코 가볍지 않다. 취재의 기본인 사실 확인을 소홀히 한 책임이 크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는 보도의 기본이 ‘그날’ 한겨레에서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살피는 일은 다른 언론에도 반면교사다. 부정확한 보도가 나온 경위를 조사해서 투명하게 밝히는 것은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다. 잘못을 숨기지 않고 고백한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언론은 오보를 피하기 위해 2중, 3중의 장치를 둔다. 모든 정보는 오염이 돼 있기 때문이다. 사실 확인을 위해 2명 이상의 취재원을 확보하고, 당사자 해명을 충분히 들어야 하는 이유다. 기사 가치 판단을 위한 전제다. 한겨레 ‘윤석열 보도’는 3명 이상의 핵심 관계자 진술을 토대로 작성됐을 뿐, 진술을 뒷받침할 근거가 부실했다. 지난해 10월11일자 첫 보도에서 ‘수차례 별장 접대’가 검찰과거사위 보고서에 담겨 있다고 적시했는데, 그 뒤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 진술을 담고 있다는 보고서엔 그 내용이 없었다.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된 윤석열 검찰총장 반론도 받지 못하고 기사화했다. 성급했다. 검찰 권력의 핵심을 겨냥한 보도치곤 부실하기 짝이 없다. 부실한 보도가 어떻게 지면으로 나갈 수 있었는지 사과문엔 이렇게 언급돼 있다. “뉴스룸의 게이트키핑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며칠 더 시간을 두고 반론도 충실히 받고 물증도 확보한 뒤 보도해야 했으나, 편집회의 등에서 충분한 토론 없이 당일 오후에 발제된 기사가 다음날 신문 1면 머리기사로 나갔다.” 상식적이지 않은 제작과정을 고백하고 있다. 당시 언론계 안팎에선 ‘조국 보도로 고전하고 있는 한겨레가 윤석열을 겨냥했다’는 말이 돌았다. 성급한 보도 이면에 정치적 의도가 있지 않느냐는 의심이었다.
독일 정치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는 “정치적 영역에서 진리추구란 없다”고 일갈했다. 정치가 사실을 선택적으로 취하고, 노골적으로 기만하는 행위를 일삼는 행위를 포착한 말이다. 언론이 정치와 다른 점은 ‘사실은 신성하다’는 원칙이 확고한 데 있다. 사실을 비틀고 왜곡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기에 독자들은 언론을 신뢰한다. 진영 논리에 휩쓸리는 순간, 공정한 언론은 기대하기 어렵다.
언론이 팩트 취재에 힘쓰지만 결과적으로 오보를 내는 경우가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반성과 성찰이다. 보도 경위를 철저히 조사해서 독자에게 충실하게 설명하는 일이다. 2012년 영국 공영방송인 BBC는 보수당 의원의 성폭행 의혹 보도가 오보로 판명되자 사장과 보도국장이 사임하며 사과했다. 잘못된 제보를 믿고 보도했지만 신속하게 잘못을 바로잡았다. 뉴욕타임스도 2003년 자사 기자인 제이슨 블레어가 코멘트를 조작하고, 보지 않은 현장을 묘사하는 등 기사 조작을 한 사례를 밝혀 1면 톱과 4개면에 걸쳐 상세히 보도했다. 숨기고 싶은 유혹과 타협하지 않고 정직하게 치부를 드러냈다. 권위 있는 언론일수록 오보에 대한 사과를 회피하지 않는다. 한겨레가 1면에 ‘윤석열 오보’를 사과한 일은 얼렁뚱땅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오보에 둔감한 언론 현실을 비춰보면 의미 있는 걸음이다.
언론은 파편적 사실의 조각으로 실체적 진실에 접근한다. 그 조각이 진실의 일부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최대한 다양한 사실들을 수집해 퍼즐을 맞춰간다. 취재원의 말이 사실인지 여부를 검증할 책임은 기자에게 있다. 언론진흥재단이 조사한 결과, 기자들은 오보의 가장 큰 원인으로 ‘사실의 미확인과 불충분한 취재’를 꼽았다.
한겨레 ‘윤석열 보도 사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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