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저연차 기자들은 자연스럽게 ‘무조건 ~하라’라는 지시를 마다하지 않고, 암묵적으로 회사의 논조를 지키려 한다. 미디어비평지나 시민단체에서 지적하는 ‘문제적 보도’는 그렇게 나온다. 언론사 조직이 수직적이고 위력이 강하게 작용할수록, 기자 개개인을 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 피해를 끼치는 정도도 커지는 셈이다. 언론사 내부에서 ‘다른 목소리’가 더 많이 나와야 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전국언론노조 국민일보지부가 ‘방역 지장 논란 국민일보 입장은 무엇인가’라는 성명을 내며 사측을 비판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국민일보는 코로나19가 확산된 이태원 클럽에 대해 보도하면서 제목에 ‘게이클럽’을 명시하고, 이어진 보도에서 ‘찜방’(블랙수면방)을 언급하며 성소수자가 코로나 확산의 주범인양 보도하면서 많은 논란을 낳아왔다. 이에 국민일보 내부에서도 성소수자를 적대시하는 자사의 논조를 문제 삼는 내부 비판이 나온 것이다.
국민일보지부는 “방역활동에 지장을 줬고”, “동성애자 혐오를 조장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며 회사의 공개적인 입장 표명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은 “국민일보는 동성애 혐오를 부추긴다는 보도를 해왔다는 비판을 자주 받으며”, “저널리즘 원칙을 훼손하는 상황을 방치해왔다”며 사측을 강하게 비판하기까지 했다. 간부인 종교국장이 직접 “반동성애는 국민일보가 지향하는 가치 중 하나”(5월12일 기자협회보 보도)라고 공표하는 상황에서, 평기자들이 그러한 기류에 정면으로 맞서는 성명을 발표했다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그동안 ‘지향’이나 ‘관행’으로 포장해왔던 보도 행태를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의지가 담겨 있다. 물론 노조의 성명만으로 그간의 실책을 덮을 순 없겠지만, 변화의 목소리가 나왔다는 점에서 희망을 걸어본다.
젠더 부문 보도와 관련, 최근 젊은 기자 사이에선 과거와는 다른 기류가 흐른다는 걸 알 수 있다. 편견과 갈등을 조장하고, 사건을 단순한 가십으로 만드는 보도에 대해 문제의식이 크다. 보수언론도 예외는 아니다. 채널A에선 버닝썬 사건 당시 피해자의 신상이 특정될 수 있는 정보를 주는 2차 가해성 보도를 한 것에 대해 기자들이 바로 항의했고, 보도본부장이 사과하고 기사를 전부 삭제한 일도 있었다.
트랜스젠더 군인의 군 복무 문제가 화제가 될 당시에 나온 서울신문의 <“트랜스젠더라도 괜찮아” 여군들이 마음 더 열었다>(1월21일)처럼 고정관념을 부수고, 논의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는 보도들도 종종 보인다. 젠더 이슈를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을 제시하기 위해 내부에선 구성원들을 설득하거나 의구심을 해소하고, 외부에선 혐오세력들의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을 견뎌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런 이들에게 나 또한 많이 배운다.
여전히 포털에 올라오는 뉴스에는 ‘혐오’의 힘이 강하다. 그러나 이에 저항하고 바꿔나가고자 하는 언론인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중의 압박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들에게 더 큰 주목과 응원을 보내고 싶다.
박정훈 오마이뉴스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