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를 스포츠 기자로 살아보니

[이슈 인사이드 | 스포츠] 양지혜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양지혜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양지혜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코로나19 사태로 모든 기자들이 사상 초유의 일을 겪었지만 스포츠 기자는 특히 더했다. 온 세상 스포츠가 멈춰버린 까닭에 취재할 현장이 완벽하게 사라졌다. 뉴스는 온갖 종목들의 대회 중단과 연기 또는 취소 소식 뿐이었다. NBA 중단, 챔피언스리그 중단, NHL 중단, 골프 마스터스 연기, 윔블던 취소, 메이저리그 개막 연기, 한국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개막 연기…. 도쿄 올림픽이 124년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개최가 한 해 미뤄지며 화룡점정을 찍었다.


그럼에도 스포츠 기사의 총량을 유지하려니 일수 막기 급급한 빚쟁이 꼴이 됐다. 예전엔 ‘뉴스 존’을 한참 벗어난 볼 취급받던 일들이 한가운데 스트라이크로 격상됐다. 축구 기자들은 FIFA 세계랭킹 87위 벨라루스를 살폈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26년째 독재 집권하는 벨라루스는 보드카와 건식 사우나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다 막아준다며 프로축구 리그를 강행한 유일한 나라다. 테니스 기자들은 자가 격리 중인 스타들이 소셜미디어에서 만나 “요즘 뭐하냐”고 몇 시간씩 수다떠는 내용을 속보로 받아썼다. 미국의 메이저리그 기자들은 한국 프로야구의 연습 경기를 실시간 중계하며 “KIA는 한국의 뉴욕 양키스, 롯데는 한국의 시카고 컵스”라는 식으로 비유까지 곁들였다.


뉴스의 주인공이 되었어야 할 사람들의 속내는 더욱 답답하다. 한국의 간판 투수 김광현은 올 초 미국으로 건너가 스프링캠프부터 전력 투구로 무실점 행진을 달리며 메이저리그 선발 진입을 눈 앞에 뒀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메이저리그 개막일이 잠정 연기됐고 그는 세인트루이스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아내와 아이들이 그립지만 행여나 미국 재입국 길이 막힐까봐 섣불리 귀국도 못한다. 리버풀도 속이 탄다. 구단 역사상 첫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달성하기까지 단 2승만 남겨뒀는데 리그가 멈췄다. 지난 시즌 승점이 딱 1점 모자라 분루를 삼켰던 리버풀은 올 시즌 2위(맨시티)와 승점 격차를 25점으로 벌리며 우승컵을 예약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영국 총리와 왕세자까지 덮친 바이러스가 시즌을 통째로 날려버릴 상황을 만들었다.


농구의 별 코비 브라이언트를 지난 1월 헬기 사고로 떠나보낸 LA레이커스는 NBA 우승컵을 코비의 영전에 바치길 원했다. 2월까지 21연승 무패 행진을 달렸던 노박 조코비치는 절정의 기량에도 뛸 무대가 없고, 불혹의 로저 페더러는 9번째 윔블던 우승에 마지막으로 도전해보려고 지난 겨울 무릎 수술을 감행했지만 대회 자체가 취소됐다. 올해가 현역 마지막인 LG타자 박용택의 시간도 무심히 흘러간다. 경기장 안전요원, 치어리더, 매점 직원, 청소부, 운전사 등 스포츠를 지탱해주는 조연들은 당장 생계가 막막하다.


마스크를 쓴 채 서로 거리를 둬야하는 코로나 시대를 살다보니 스포츠의 의미가 새롭게 보인다. 우리의 일상이 건강하고 평온하다는 증거가 팬들과 생중계로 만나는 스포츠였다. 한국 프로야구가 어린이날 개막을 앞두고 있다. 훈련을 멈췄던 국가대표 선수들도 다시 진천선수촌으로 들어간다. 부디 단 한명의 확진자 발생도 없이 모든 경기가 오롯이 치뤄지기를. 간절한 기도를 보태 뉴스를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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