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적인 공격을 전염성이 있는 것으로 취급해야 한다.”, “공공안전에 미칠 영향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만큼의 정보만을 제공하라.”, “피해자가 겪은 일을 축소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최악의 인종주의나 여성혐오 표현들에 대한 분명한 의견 표명 없이 그 사례들을 모아서 리스티클(listicle)로 발행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미국 ‘데이터&소사이어티 연구소’가 발간한 〈미디어는 어떻게 허위정보에 속았는가(The Oxygen of Amplification)〉라는 책에 정리된 보도 방법론이다. 여기엔 “편견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다양한 여론 조작자들이 정보를 제공하거나, 기자가 먼저 요구하지 않은 코멘트를 하겠다고 다가올 경우 특별히 조심해서 대응해야 한다”와 같은 취재 지침도 있다. 2016년 미국 대선을 전후해 확산된 이른바 ‘가짜뉴스(Fake News)’와 인터넷을 중심으로 형성된 조작, 편견, 혐오의 확산에 대응하기 위한 언론의 전략인 셈이다.
혐오와 편견이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는 부작용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일어났다. 전술한 바와 같이 그에 대항하는 언론계의 자발적인 노력도 꾸준히 이어져 왔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 깊게 봐야 할 점은 미국 사회는 결코 법적인 제재를 통해 언론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유는 한 가지다. 과하다 싶을 정도의 언론자유(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라는 신념, 그리고 이것을 구체화한 수정헌법 제1조 때문이다.
우리 모습은 어떨까? 최근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방송법 개정안엔 혐오와 추측·과장 보도 금지 규정이 추가됐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현재 방송법 제33조 심의규정을 기준으로 방송 내용을 심의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과징금 부과 등의 결정을 내린다. 여기에 두 가지 금지 사항이 더해진 것이다. 무엇이 ‘혐오’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예상되지만, ‘사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추측 및 과장된 보도’란 대체 무엇을 뜻하는가. 한 마디로 개정안은 무엇이 ‘가짜뉴스’인지 판단할 권한을 방심위에 주는 법이다.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인포데믹(Infordemic)’의 폐해를 막겠다는 취지였지만 정작 개정안에는 ‘코로나19’나 ‘재난상황’에 대한 문구는 찾아볼 수 없다. 이 의원이 의도한 것이 무엇이었든 규제만 추가된 꼴이다.
당장 법조계에서도 문구 자체가 너무 추상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그대로 통과된다면 언론의 자유는 심각하게 침해될 것이 뻔하다. 경우에 따라 정치적 악용 가능성도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접수된 반대 의견도 3월30일 현재 1만7000여 건에 이른다.
문제는 지난 2018년 10월 문재인 대통령이 “허위조작정보(가짜뉴스)는 보호받아야 할 영역이 아니다”라고 언급한 이후 일어난 일련의 규제 강화 움직임이다. ‘가짜뉴스’라는 말은 지금껏 그 실체가 무엇인지조차 규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용되고 남용되어왔다. 현재 시점에서 완전히 확인되지 않은 정보와 언론의 오보까지 ‘가짜뉴스’에 포함시켜 규제한다면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 영역은 크게 줄어든다. 부작용을 막겠다고 도입한 섣부른 규제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해칠 수 있는 것이다.
근대 민주주의 역사에서 이러한 해악을 막고자 하는 경고 목소리는 끊임없이 흘러 나왔다. 찰스 휴즈 전 미(美) 연방대법원장은 1931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언론자유의 오·남용이 악(惡)일 수 있다. 그러나 정부와 권력이 그 보도를 막는 것은 더 심각한 공공의 악이다.” 언론을 규제하는 법을 만들 때 극히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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