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기업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조직문화를 갖지만 언론사, 특히 한국 언론사의 위계구조는 폐쇄적이고 수직적이기로 유명하다. 수많은 단점을 가진 이 구조는, 그러나 나름의 연원을 갖고 있다. 언론이란 사회 전체를 조망하는 ‘종합예술’이며 기자 개인의 노력 못지않게 다수의 협업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좋은 뜻이든 나쁜 뜻이든 한 언론사에 속한 기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그들이 생산해낸 기사는 체계적으로 정리돼 독자 또는 시청자에게 전달된다. 이 과정을 지휘하는 위계구조의 최정점엔 편집회의가 있다.
오랜 기간, 어쩌면 언론사가 탄생한 이래 지금까지 편집회의의 기능은 바뀌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이슈를 선별하고, 각 분야 기자들의 취재 내용을 보고 받고, 뉴스의 방향을 지시하는 따위의 일 말이다. 하지만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라 편집회의의 형식과 내용은 바뀌고 있다. 논의의 중심을 지면 편집에서 디지털 콘텐츠 제작으로 옮기고 시간과 횟수를 조정한다. 뉴스 소비 패턴의 변화가 기자들의 업무 방식과 편집회의 형태를 변화시킨 것이다. 언론계에서 주목하는 또 하나의 변화가 있다. 누가 회의에 참석하느냐다.
최근 사례는 MBN이다. 보도국장과 부장만이 참석하던 편집회의에 올해부터 평기자가 참석한다. 그날그날 당직을 맡은 평기자가 편집회의에 참석해 회의 내용을 기록하고 이를 구성원과 공유하는 방식이다. 이는 지난해 불거진 자본금 편법 충당 사태 이후 기자들이 요구한 개선안 가운데 하나였다. 평기자와 간부들이 의견을 나눌 기회가 확대되는 만큼 내부 소통 강화는 물론 보도의 공정성을 높이는 데도 일조할 것이라는 기대다.
이런 ‘열린 편집회의’는 여러 언론사에서 시도되고 있고 일부에선 정착했다. KBS는 오전 편집회의에 기자협회장이 참석한다. 회의 내용을 기록하고 공개하는 역할도 하지만 발언권을 갖기도 한다. 뉴스에 대한 평기자들의 의견을 공식적으로 간부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SBS도 ‘8시뉴스부’ 소속 평기자 4명이 번갈아가며 편집회의에 참석한다. MBC는 노조와의 단체협약에 ‘조합원 누구나 편집회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조항을 넣었다.
한겨레신문은 지난해 조국 전 장관 관련 보도를 둘러싼 내부 갈등을 계기로 편집회의 문턱이 낮아졌다. 현재 입사 10년차 이하 기자들로 꾸려진 ‘레드위원회’의 상임위원이 편집회의에 참석한다.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각 언론사마다의 도덕성 위기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 내부 소통의 문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편집회의의 개방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열린 편집회의’가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만능열쇠일 수는 없다. 당장 예민한 기사 정보를 어느 정도까지 공유할지, 개방과 보안 사이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구성원 전원에게 전달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참석자들은 말수를 줄이게 될 것이다. 치열한 토론보다는 형식적 발제와 ‘좋은 게 좋은 거’ 식의 덕담만 무성한 회의로 전락할 위험도 있다. 그러나 ‘닫힌 편집회의’의 부작용에 눈 감을 수만은 없다. 문제를 해결하고 신뢰를 쌓기 위해 감당해야 할 일이 있다. 변화한 미디어 환경에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주목해야 하는 건 투명성이다. 이 뉴스가 어떤 과정을 통해 취재됐는지를 이용자들은 묻고 있다. 이제 ‘독수독과(毒樹毒果)’는 법정에서뿐 아니라 지면과 모니터에서도 요구되는 원칙이다. 마찬가지로 뉴스의 생산자이자 첫 소비자인 기자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 중요한 결정이 이뤄졌는지를 묻고 있다. 유난히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언론사에서 ‘열린 편집회의’는 그나마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구체적 해법이다. 구성원들에게조차 투명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독자와의 신뢰 구축은 언감생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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