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 안의 민주주의 회복에 힘쓸 때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연초부터 언론계가 뒤숭숭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보도로 지난해 가을 이미 ‘대자보 사태’를 겪었던 한겨레에선 편집국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이 또 나왔다. 박용현 편집국장이 신년기획 <노동자의 밥상> 제목과 레이아웃에 대한 편집팀 의견을 묵살하고, 조국 전 장관 기소 관련 보도에서는 검찰만 비판하는 쪽으로 제목을 달았다는 주장이다. 편집팀 기자들은 성명에서 “소신과 원칙에 따라 기사에 충실한 제목을 뽑고 싶다. 독단적 판단을 강요하는 국장의 편집권 행사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YTN은 보도국장에 대한 임명동의 투표가 두 번 연속 부결돼 새로운 보도국장 후보자를 지명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노동조합이 “위기의 근원이 무엇인지 난상토론을 하자”고 요구했고, 사장이 이를 수용해 9일 저녁 ‘사원과의 대화’가 열린다. 경향신문은 협찬금을 대가로 기사를 삭제했다는 구성원들의 비판이 제기된 뒤 사장과 편집국장, 광고국장이 사퇴했다.


각각의 회사에서 각각의 이유들로 일어난 일 같지만 공통적으로 일선 기자들의 위기감이 묻어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최근 펴낸 보고서 ‘10대 청소년 미디어 이용조사’를 보면 10대들은 TV나 종이신문보다 스마트폰을 월등하게 중요한 매체로 인식하고 있었다. TV뉴스나 신문보다 유튜브 콘텐츠를 훨씬 더 신뢰한다는 뜻이다. 미디어 환경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조직은 변화에 둔감하고 리더십마저 부재하다는 불안감은 이미 퍼져있었다. 그런데 레거시 미디어의 미덕이라 생각했던 ‘공정성’, ‘불편부당함’, ‘편집의 투명성’마저 무너진다면 어디에서 차별지점을 찾아야 한단 말인가. 가장 토론이 활발해야 할 언론사에서 현장 기자들의 목소리와 의견이 묵살되는 상황이 되풀이되면서 기자들의 무력감은 ‘레거시 미디어가 덩치 큰 타이타닉호처럼 침몰하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으로 귀결된다.


작년 하반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를 겪으며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커진 상태다. 과거엔 친정부적인 보도 행태나 지나치게 보수적인 매체로 개혁의 초점이 모아졌지만 최근의 개혁 요구는 ‘언론계 전반’과 ‘보도 관행 자체’를 이야기한다. 20·30대 젊은 전직 기자들을 심층 면접한 전남대 이오현 교수팀은 신문의 위기가 ‘디지털화 실패’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구시대적인 조직문화’ 때문이라 주장한다. 이 교수 팀은 신문사 조직문화의 특징으로 △위계적 집단주의 문화 △남성중심주의 문화 △정파주의 문화 △자본 종속적 문화 △비윤리적 문화 △전문성 배양 억제 문화를 꼽았다. “이런 조직문화가 사회적·기술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해 여러 측면에서 저널리즘의 원칙과 질을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시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일선 기자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조국 전 장관 관련 비판보도를 축소한 한겨레 사례는 ‘정파주의’ 때문으로, 경향신문 사례는 ‘자본 종속적 문화’ 때문으로 해석하면 어색하지 않다. YTN 보도국장 부결사태도 ‘위계적 집단주의’로 토론이 힘든 언론계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을 거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이 논문을 소개하며 “우리 안의 민주주의, 우리 안의 정의와 공정을 되살려야 한다”고 자성했다.


탄광 안의 카나리아는 이미 신호를 보냈다. 한겨레 기자들은 위계로 억누르는 편집국장의 부당한 지시에 퇴진을 요구했고 경향신문 기자들은 스스로 독자들에게 사과하며 전말을 밝히는 성명을 발표했다. 위기를 감지한 기자들이 신호를 보내고 있다. 밖으로 향하던 비판의 날을 잠시 안으로 돌리고 우리 안의 민주주의를 회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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