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여성 메인앵커 기용, 이제 첫 걸음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KBS 9시뉴스 메인 앵커 이소정’의 등장을 환영한다. 언론 환경이 요동치고 있지만 KBS 9시뉴스는 여전히 한국을 대표하는 간판 보도 프로그램이다. 이소정 앵커의 기용 소식이 만시지탄이지만 의미가 큰 이유다.


그간 한국의 방송 뉴스 프로그램엔 3개의 암묵적 규칙이 있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남오여삼(50대 이상의 남성과 30대 이하의 여성)’, ‘남중여경(남성은 경성 뉴스, 여성은 연성 뉴스)’ 그리고 ‘남선여후(남성 앵커 먼저 여성은 나중)’다. 지상파뿐 아니라 대다수의 종합편성채널도 이 규칙을 충실히 따랐다. 때로 주말 뉴스 또는 일부 채널에서 여성 앵커가 ‘나홀로 진행’을 맡은 적은 있다고 해도, 시스템의 변화의 결과가 아닌 ‘개인기’에 그쳤다. 그런 점에서도 이소정 앵커의 발탁은 화제를 모았다. 대부분의 헤드라인이 ‘40대 여성기자 지상파 뉴스 메인 앵커로 첫 발탁’ 식이었다. ‘남기자’와 ‘여기자’의 구분이 사실상 무의미해진 현실이지만 여성 앵커의 탄생을 가로막은 유리천장만큼은 그만큼 견고했다는 의미일 터다.


KBS는 이소정 앵커 발탁을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수용자 중심의 뉴스, 시대적 감수성에 반응하는 뉴스를 제작하기 위해 메인 앵커에 여성을 발탁했다”고 밝혔다. 여기에서 ‘시대적 감수성’이란 남성과 여성의 평등을 의식한 젠더 감수성을 의미한 것일 터다. 여성이 필요해서, 시대의 흐름엔 여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의식했기에 여성을 뽑았다는 뜻이다.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경쟁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오히려 반증한다. 한국 언론계가 갈 길이 멀다는 점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미국 CNN의 베테랑 종군기자이자 뉴스 앵커인 크리스티안 아만푸어가 여성이라서, 시대의 젠더 감수성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기용됐을까. 그렇지 않다. 영국 BBC의 많은 뉴스 프로그램이 연륜 풍부한 여성 앵커를 단독 기용하는 것도 젠더 감수성과는 거리가 멀다. 남성과 여성에게 동등하게 기회가 열려 있는 자연스러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선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모든 일엔 마중물이 필요하듯, 이소정 앵커가 그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


뉴스 프로그램 진행자 선정에만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유리천장은 여전히 신문과 방송, 디지털을 막론하고 그 존재감이 확고하다. 한국여기자협회가 최근 발표한 바에 따르면 27개 언론사 중 여성 임원이 한 명이라도 있는 곳은 4곳(내일신문ㆍ동아일보ㆍ세계일보ㆍ연합뉴스)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전무하다. 그나마 차장급 이상의 여성 비율이 평균 24%에 달한다는 점은 낙관적이다. 그러나 이 24% 중 유리천장을 깨고 임원급까지 올라갈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지가 진짜 관건이라 하겠다.  


현재 차장급 여성 기자들은 입사하면서 극소수에 불과했던 동성 선배들에게 “내가 회사 들어왔을 땐 여자 화장실이 편집국에 없어서 1층까지 내려가야 했어”라는 무용담 아닌 무용담을 들어야 했다. 시간은 흘렀고, 여성 기자의 숫자는 늘었다. 이젠 각 출입처에서 “(남성 기자가 소수에 가까워지고 있으니) ‘남(男) 기자회’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돈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로 이어지기엔 역부족라는 점을 한국여기자협회 조사는 보여준다. 메인 뉴스 앵커가 40대 혹은 50대 혹은 그 이상의 여성이라고 해도 뉴스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시대가 오기를 희망한다.


이소정 앵커는 첫날 오프닝 멘트로 “시청자 여러분과 소통하면서 진실과 희망을 쌓아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 약속을 우리는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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