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검 기사 제작업체까지 등장하다니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하루 기사 20건 이상 송고.’ ‘500자 분량의 기사는 15분이면 충분.’ 한 종합일간지 디지털뉴스부에서 일하는 A기자는 포털 실검 대응 기사를 찍어냈다. A기자는 “발제 회의나 데스킹도 없다. 오직 실검과 온라인 이슈를 따라 쓸 뿐”이라고 말했다. 연예 매체만 실검에 등장한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는 건 아니다. 종합일간지, 경제지도 누리꾼들의 악플을 ‘논란’으로 포장해 보도함으로써 오히려 누리꾼들의 악성 댓글을 부추기고 있다.


왜 언론사는 이런 자극적 내용의 실검 대응 기사를 물건 찍어내듯이 생산하고 있을까. 트래픽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언론사들은 아침 간부회의에 전날 트래픽 상황을 보고하고 주 단위로 시상한다. 성과가 좋으면 모르되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질책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비상이 걸린 온라인 뉴스부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클릭수 확보 전선에 내달린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의 어뷰징 기사를 닥치는 대로 쏟아낸다. 이런 상황에서 뉴스 품질이나 공익적 가치가 끼어들 틈은 어디에도 없다.


포털 실검은 트래픽 기사의 숙주가 되고 있다. 언론은 실검 순위에 오르내리는 키워드를 소재로 기사를 더 많이, 더 빨리 생산해 포털에 유통한다. 실검과 트래픽 기사의 악순환 고리는 포털로 집중되는 뉴스 유통 구조 때문이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펴낸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18’에 따르면 언론사 홈페이지를 직접 방문해 뉴스를 읽는 비율은 5%에 불과했다. 대부분 포털을 통해 뉴스를 보기 때문에 언론사들은 실검 기사를 언론사 홈페이지로 끌어들이는 미끼로 활용한다.


언론사의 실검 대응은 날로 고도화되고 있다. 규모가 큰 언론사들은 아예 연예·스포츠 매체를 인수하거나 자회사를 설립했고, 닷컴을 운용하는 언론사들은 비정규직과 인턴이 주축인 온라인 이슈 대응 조직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실검 기사를 생산해 언론사에 납품하는 외주업체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기자협회보 취재 결과, 이름만 대면 알만한 언론사들이 외주업체와 계약을 맺고 실검 기사 등 연예뉴스를 공급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누가 쓴지도 모르는 외주업체의 기사가 언론사 독자적으로 취재, 생산한 기사처럼 포장돼 나가고 있는 셈이다. 주말 및 휴일 시사·연예기사를 전담하는 객원기자 모집 구인광고를 낸 경제지도 있다. ‘알바 기자’를 활용해 일주일 내내 실검에 대응하겠다는 뜻이다.


공들여 취재한 양질의 기획기사 대신, 뚝딱 만들어내는 이슈 검색어 기사들이 조회수 상위에 오르는 현실은 기막히다. 디지털 뉴스 생태계를 갉아먹는 이런 구조는 언론사와 포털 공동의 책임이다.


네이버가 내년 4월부터 뉴스 콘텐츠 제공 대가로 언론사에 지급한 전재료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대신에 뉴스에서 발생하는 광고 수익을 언론사에 전액 지급하되 사용자 구독과 충성도를 반영해 분배한다고 밝혔다. 네이버는 수익 배분 지표로 순방문자수, 조회수, 재방문자수, 유효 소비기사수, 언론사 편집판 누적 구독자수, 언론사 편집판 순증 구독자수 등 6가지를 제시했다. 트래픽에 직결되는 순방문자수와 조회수 가중치가 각각 0.2로 다른 지표의 가중치(0.15)에 비해 높다. 트래픽을 올릴수록 광고 수익을 많이 가져갈 수 있다는 얘기다.


네이버의 새 비즈니스 툴이 ‘트래픽 지상주의’ 경쟁의 도화선이 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편집위원회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