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들이 KBS 000기자를 좋아해 (수사 상황을) 술술술 흘렸다. 검사는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는지 모른다. 사람 마음이 그렇다는 것.”
언론사 법조팀장인 한 남성기자는 지난 15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알릴레오’에 출연해 이같이 말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의혹을 취재한 여성기자를 두고 나온 이 성희롱성 발언은 이상 현상이 아니다. 남성이 기득권을 가진 사회에 발 디딘 대다수 여성기자들이 숨 쉬듯 겪는 ‘여성혐오’의 일면일 뿐이다. 이날 사과 발언에 포함된 “사석에도 많이 하는 얘기라 (그랬다)”는 표현은 이를 방증한다.
기자협회보가 신문·방송·인터넷매체 소속 만 5년~20년차 여성기자 10여명을 취재한 결과 실제 여성기자들은 동료 기자들 사이에서, 취재원과 관계에서 여러 부당한 경험을 겪은 바 있다고 토로했다. 기자가 아닌 여성으로 취급 당하며 성희롱성 발언을 듣거나 업무 능력을 폄훼당하는 경우는 전형적이다. 신문사 A기자는 “힘들게 노력해 인터뷰를 따냈더니 ‘(인터뷰이랑) 잤냐’는 말이 돌더라. 그런 게 찌라시로 돌아 남편이 본 적도 있다. 치마를 입으면 홀리려고 그런다는 말을 한다”면서 “모멸감을 느꼈다”고 했다.
경제지 B기자는 “(취재원이) ‘남기자는 친해지려면 영혼의 코드가 맞아야 하는데 여기자는 그냥 친해질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거나 ‘아이고 미인이시네요’ 칭찬을 할 때도 있다. 취재원과 친해지려는 노력을 이성적 친밀감으로 오해할 때가 많다. 실제 어깨나 무릎을 터치하는 경우는 정말 많다”면서 “기자이기에 앞서 여성으로 인식한다는 얘기라 여성으로서든 기자로서든 불쾌하다”고 말했다.
여성기자들에 대한 이 같은 인식은 업무 전반에서 여러 양상으로 형태를 드러낸다. 기자들 사이에선 여성이란 이유로 업무 역량을 폄훼당하고, 취재원은 여성기자가 ‘여자’란 이유로 선뜻 취재에 응하지 않는 일이 벌어지는 식이다. 특히 경찰이나 검찰, 법원, 정치권 등 남성 중심 조직을 담당하는 여성기자들이 자주 겪고 있다.
신문사 C기자는 “사회부 경찰팀 시절 강력계장이나 형사과장에게 취재차 점심약속을 잡으려 하니 ‘여기자랑 밥 안 먹는다’며 거절을 하더라. 취재확인 때문에 몇 차례 연락을 주고받고서야 ‘남기자를 끼워서 먹자’며 약속을 했다. 이거야말로 차별과 배제 아닌가”라면서 “법조 출입에서 취재 잘하는 여기자에겐 ‘오빠 취재’한다는 뒷말이 항상 붙지 않나. 여성기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 왜곡된 시선의 두 양상이라 본다”고 말했다.
여성기자에게서 ‘기자’가 아닌 ‘여성’을 보는 시선 속에서 여성기자들은 고심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 여성성을 내세워 취재하고 있는 것 아닌가’ 행실을 고민하고, ‘저 (여)기자야 말로 진짜 오빠 취재를 하네’라는 여성혐오 가해 주체가 되는 게 대표적이다. 신문사 D기자는 “정치부 시기 남자기자들의 술먹으며 취재하는 전통적인 방식, 그 ‘형님아우 문화’가 싫었고 끼려해도 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고 쉽지 않은 기자로 보이려 애썼다”면서 “원래 잘 웃는 편인데 어느 순간 내가 여성이란 점을 내세워 취재에 이용하는 거 아닌가 갈등이 들었다. 여성으로 보이고 싶은 건 아닌데 아무튼 남자기자가 웃는 것보단 거부감이 덜할 테니 ‘여성성’을 이용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고 했다.
종합일간지 E기자 역시 “수습 시절 모 매체 여기자가 경찰에게 콧소리를 내며 취재하는 걸 보고 ‘저게 미쳤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나가자마자 욕을 하더라. 생각해보니 그냥 친절하게 말했을 수 있고 콧소리도 내 해석인데 나는 그렇게 본 것”이라며 “오히려 오해하는 사람이 문제일 수 있다”고 했다. 실제 ‘여성성’을 내세워 취재하는 여성기자가 있다 해도 단편적인 비판은 온당치 않다. 남성기자들이 자신의 행실을 고민하며 일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언론계는 남성에 ‘기울어진 운동장’이고, 여성기자는 ‘남성 기득권 사회’ 속에서 불가피한 방편을 취한 것이어서다.
이 같은 인식의 원인에는 언론사 책임도 있다. 남성중심 문화를 청산하려 하기보다는 취재를 위해 써먹기에 급급했던 것. “너도 화장도 좀 잘 하고, 치마도 입어서 뭐 좀 물어오라”는 말이 뉴스룸에서 공공연히 나오던 게 불과 몇 년 전이다. 지역신문 F기자는 “항상 간부들이 입버릇처럼 ‘여기자가 정치 파트를 잘한다’는 말을 한다. 국회의원 대다수가 남자니까 이성일 때 스킨십이 더 좋다는 거다. 칭찬인지 욕인지, 황당하다”면서 “지역에선 취재를 위해 누구랑 술을 마시면 다음날 온 관공서 사람들이 다 안다. ‘헤프다’는 소문이 돌고 그런 시선이 있으면 의식을 안 할 수 없게 되고 위축된다”고 했다.
우리 사회 전반의 남성 기득권 문화 속에서 여성기자들이 겪는 현실은 성폭력과 관련한 수치로도 확인된다. 지난해 11월 한국여성변호사협회, 한국여기자협회 등 직능단체가 내놓은 ‘전문직 여성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및 대책마련’에 따르면 교수, 의료인, 언론인,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 종사 여성 총 101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성희롱·성폭력 행위를 12개 유형으로 나눠 피해경험을 조사한 결과 언론인은 12개 전 부문에서 가장 많은 피해 경험자가 나온 직군이었다.
권력을 가진 기득권 남성이 중요 정보를 가진 경우가 많은 만큼 저연차 여성기자들이 특히 취약한 구조다. 기자협회보 취재과정에서도 “출입처 유부남 취재원이 애인을 하자고 했다” “50대 국장급 공무원들이 독방을 쓰지 않나. ‘젊은 여기자 오셨는데 혼자 있을 때 한번 놀러오라’고 하더라” “좌식식당인데 자꾸 허벅지에 손을 올렸다” “식사자리 가면 꼭 아저씨들 옆자리를 여기자 자리라고 비워놓는다” “(성애묘사가 많은) 소설책을 선물하더니 전달식으로 한번 안아보자고 하고, 몇 달에 걸쳐 ‘읽어봤냐’고 계속 물었다” 같은 발언이 나왔다.
인터넷매체 G기자는 “취재원과 관계도 어렵지만 사실 출입처 남자기자 선배들이 더 위험한 경우가 많다. 예컨대 ‘요즘 이런 얘기하면 큰 일 나는데’라면서 하면 안 되는 말을 다 하는 식”이라면서 “한번은 출입처에서 남녀 기자가 사귀었는데 남기자가 술자리에서 다른 기자들에게 ‘그 여기자가 잠자리에서 어떻다’는 얘길 하더라. 모이면 무슨 얘길 하는지 모르겠지만 걱정될 때가 많다”라고 했다.
언론계의 남성 중심 문화는 여전히 공고하지만 목소리를 내는 여성기자들이 늘고 있다. 지역 방송사 H기자는 “신입 시절 선배들이 룸살롱에 데리고 갔다. 남자처럼 취급한다고 데려간 건데 그게 능력을 인정받는 건 줄 알고 말하지 못했다”면서 “시대가 바뀌었다. 점점 더 많이 얘기하는 분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주간지 I기자는 “알릴레오에서 나온 발언은 특정 기자를 지칭한 걸 수 있지만 사실 여기자들 전체에 엿을 먹인 거라 본다”면서 “발언이 성차별로, 문제발언으로 수용되는 토양이 됐다는 건 다행스럽게 보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최승영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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