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보도와 지혜의 저널리즘

[스페셜리스트 | IT·뉴미디어] 김익현 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

김익현 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

▲김익현 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

1950년대 미국 사회에 ‘빨갱이 공포’를 유포한 건 언론이었다. 그들은 “정부 고위층에 공산주의자 205명이 침투해 있다”는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의 주장을 그대로 옮겼다. 이런 ‘받아쓰기’ 기사들은 미국 사회에 아픈 상처를 남겼다.


늘 궁금했다. 미국 언론의 게이트키핑 시스템은 왜 무기력하게 무너졌을까? 당시 기자들은 매카시 주장이 사실이라고 믿었을까? 미첼 스티븐스의 ‘비욘드 뉴스’에서 그 궁금증을 일부 해소할 수 있었다. “사실에 굶주린 언론은 탐사보도로 대통령을 끌어내릴 수도 있지만 이용당할 수도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공방이 장기화되면서 한국 언론의 보도관행이 도마 위에 올랐다. 검찰이 흘려주는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쓰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단독 기사의 절반 이상을 검찰이 썼다는 보고서까지 나왔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지난달 10일부터 24일까지 신문과 방송에 나온 조국 관련 단독 기사를 분석한 결과다.


70년 전 미국 사례와 최근의 조국 보도를 정면 비교하는 건 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특정 취재원의 정보를 그대로 옮기고 있다는 점에선 유사한 점이 많다. 둘 다 ‘맹목적 인용 보도(He said/she said journalism)’의 전형적인 사례다.


정파적 태도 때문이란 비판도 적지 않다. 하지만 오히려 언론의 속성 때문이란 진단이 더 정확해 보인다. 스티븐스의 지적대로 언론은 ‘사실에 굶주린’ 존재다. 새로운 사실을 접하면 먼저 보도하려는 욕망이 강하다. 이런 욕망은 때론 워터게이트 특종 같은 탐사보도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매카시의 선동에 무기력하게 이용되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이런 한계를 극복할까? 뻔한 얘기지만 언론의 기본인 팩트체크에 충실해야 한다. 워터게이트 특종 기자들이 모범을 보여줬다. 그들은 “서로 다른 취재원 세 곳 이상에서 확인된 사안”만 기사로 썼다고 고백했다. 지금 쏟아지고 있는 많은 ‘단독 기사’들에선 이런 노력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해 보인다. 언론의 속성에 대한 냉정한 성찰이 함께 뒤따라야 한다. 특히 폭로성 특종에 대해 좀 더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특종은 친밀성이나 은밀한 취재 활동보다는 조사와 분석을 통해 입수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는 스티븐스의 주장은 새길 대목이 적지 않다. 흘려주는 정보는 오염돼 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이제 뉴스보도 경쟁이 벌어지는 운동장은 평평해졌다. 더 이상 기자들만의 리그가 아니다. 최근의 조국 관련 보도들은 이런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래서일까? “속보 경쟁에서 한 발 물러나 통찰력 있는 해석을 제공하는 지혜의 저널리즘을 추구하라”는 스티븐스의 권고가 유난히 솔깃하게 들린다. ‘지혜의 저널리즘’은 사실에 굶주린 언론을 이용하려는 시도를 막아줄 방패막이가 될 수 있겠단 기대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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