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의 경영 철학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고객’이다. 그는 여러 저서와 강연을 통해 고객 창조와 고객 중심 경영을 강조했다. 굳이 경영학 교과서를 펼치지 않아도 고객 없는 비즈니스를 상상하긴 어려운 일이다.
언론사의 고객은 누구일까? 독자라고 쉽게 답할 수 있는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언론사는 독자와 광고주라는 두 고객을 갖고 있었고 재정적 기여도에서 광고주는 독자를 압도했다. 언론사가 독자보다 광고주에 관심이 더 많다는 건 비밀도 아니었다. 합리적 판단을 하는 경영진에게는 당연한 선택일 뿐.
그런데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며 위기가 찾아왔다. 종이신문 열독률은 1993년 87.8%에서 지난해 17.7%로 급감했고 TV 뉴스 이용시간은 2010년대 들어 50분대에서 30분대로 떨어졌다. 당연히 종이신문과 지상파 TV의 광고매출은 급락했다. 전체 광고시장 규모는 커지고 있지만, 디지털 모바일 영역에나 해당하는 말이다. 이제야 언론사들은 진짜 고객에게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사실 두 고객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하냐는 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수준의 질문도 아니었다. 독자 없는 곳엔 광고도 없다. 그 반대라면 몰라도.
우리의 독자는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어떻게 행동하며 무엇을 원하는가? 기자협회보 취재진은 지난 9개월간 미디어 이용자들을 만나고 국내외 언론사를 찾았다. 이용자들은 맥락과 정보, 통찰과 신뢰를 원했고 언론사가 자신들의 눈높이에 맞춰주길 바라면서도 전통 언론이 던질 수 있는 심오한 문제를 다뤄주기 바랐다. 국내외 언론사들은 얼핏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독자의 요구 속에서 길을 찾아 나섰다. 첫걸음은 이들을 아는 것이다.
가디언은 2011년부터 뉴스 편집계획의 일부를 온라인에 공개하고 독자들의 의견을 반영했다. 노르웨이의 십스테드(Schibsted)는 독자 정보를 바탕으로 구독모델 전환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덴마크의 온라인 매체 제틀랜드(Zetland)는 독자를 ‘멤버(member)’라고 부르며 언론사의 일원으로 대우한다. 타임스(The Times)와 선(The Sun)을 발행하는 영국의 뉴스UK는 독자를 150개 집단으로 세밀하게 분류해 관리한다. 이용자 분석 플랫폼 ‘뉴스IQ’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국내 언론사들도 ‘독자 알기’에 힘을 쏟고 있다. ‘독자팀’ 또는 ‘독자개발팀’ 등 조직을 신설하기도 하고, 자체적인 독자 분석 툴을 개발하기도 했다(중앙일보, 연합뉴스). 독자들의 반응을 활용해 콘텐츠를 제작하거나(KBS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 오프라인에서 독자들을 정기적으로 만나는 행사를 열기도 한다(시사IN ‘중림동 다이내믹’). 기자가 직접 자신의 기사에 댓글을 달아 독자와 소통하고(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유튜브 채널을 열어 구독자들과 소통한다(CBS 김연지 기자).
이런 ‘독자 알기’ 또는 ‘독자와의 관계 맺기’는 언론사 생존과 직결된 문제가 됐다. 뉴스 UK에서 데이터 분석을 담당하는 베디에르 에디미르 팀장은 “빨리 시도해보고 실패하더라도 책임을 추궁하지 않는 스타트업 문화가 필요하다. 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한다.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켜가되 변화에 적응하는 유연함을 갖추라는 주문이다. 고객은 과거처럼 집에서 종이 신문이 배달되기를 기다리거나 저녁 9시에 맞춰 TV 앞에 모여들지 않는다. 늦었다. 이제 언론사의 진짜 고객, 독자를 찾아가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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